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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9.10 조회수 241

<웹투니스타의 Deep Impact - 4th Impact>

 

완벽하지 않아도, 즐기는 당신들에게 박수를

<퍼펙트 게임> (장이 작)

 

웹투니스타(팟캐스트 진행자)

 

아시안게임이 끝났다. 수많은 땀방울들이 서로 경쟁하는 무대는 언제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사실 아시안게임은 최고의 선수들이 맞붙는 경기는 아니다.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어디까지나 프로 선수들이 아닌 아마추어 선수들의 대결을 전제로 하고 있다. 체육학사전에서 아시안게임에 내리는 정의는 ‘아시아 국가들끼리 겨루는 아마추어 스포츠 대회. 올림픽처럼 4년마다 개최된다.’ 라고 되어있다. 흔히 국가대항전으로 알고 있는 월드컵의 경우는 각국의 축구협회들이 속해 있는 FIFA가 주관하는 대회이기 때문에 프로선수들이 출전하지만,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과 같은 대회들에는 ‘와일드카드’ 제도가 있는 이유기도 하다. 프로선수들의 경기에 눈이 익숙해진 사람들에겐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프로선수들의 대결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나오기도 한다.

 

수많은 경기들 중에서 가장 이슈가 된 것은 야구였다. 실업팀의 선수들로 이루어진 대만, 영어강사가 4번 타자를 맡고 있다는 홍콩, 대학 선수 등 아마추어 선수들이 주축이 된 일본팀과 프로선수들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팀이 대비되면서 한국 선수들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그런 경기들 중에서 가장 놀라운 순간은 우리나라가 대만에게 패배를 당한 순간도, 홍콩의 영어강사 겸업 4번 타자에게 홈런을 맞은 순간도 아니었다. 인도네시아와의 경기 중에 황재균이 3점짜리 홈런을 치고 2루 베이스를 밟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 한 장 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유격수는 황재균 선수에게 손을 내밀어 하이파이브를 요청한 것이다.

 

(사진 = 뉴시스)

 

이후 경기를 보면서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경기 후반(이라고 해도 콜드게임으로 끝났기 때문에 5회였다)에 인도네시아는 좌익수 뒤로 넘어가는 홈런을 같은 선수에게 한 번 더 맞는다. 좌익수는 공을 바라보고 있다가 뒤를 돌아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와, 저게 넘어가네!” 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고, 경기 내내 웃으며 경기하는 모습이 경이롭게 보였다. 140km이 넘는 공을 보고선 활짝 웃으며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를 보면서 스포츠의 힘을 느꼈다.

 

승패와 관계없이 상대의 플레이를 존중하고, 필드 위에 올라 경기를 펼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경지. 상대의 화려한 플레이에 감탄하고, 우리의 좋은 플레이에 놀라워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물론, 인도네시아는 전패로 B조 꼴지를 기록했다. 하지만, 연이은 패배에도 기죽지 않고 매 경기를 즐기는 모습은 인상 깊었다. 그렇게 경기를 즐기는 선수들을 보고 있으니 한 웹툰이 떠올랐다.

 

아마추어 “야구선수”

 

장이 작가가 다음웹툰에서 완결한 <퍼펙트 게임>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연재했다가 5년의 휴식기를 갖고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총 10년에 걸쳐 연재한 웹툰이다. 주인공 오찬호가 소속된 블루엔젤스 팀이 치르는 경기와 역경들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선수’들은 모두 사회인 야구선수다. 블루엔젤스 팀은 하늘시장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만들어진 팀이다. 생선가게를 하는 4번 타자, 칼국수집을 하는 내야수,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인 유격수,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선수에 감독 겸 투수는 은퇴 후에 동네 마실을 다니는 할아버지다. 주인공 오찬호는 에이스이자 백수였다가 대기업에 합격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만든 팀이니 실력이 뛰어날리 없다. 연습은 아침 가게 문을 열거나 출근을 하기 전에 조깅으로 대체하고, 주말에는 경기가 있으니 연습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수비에서는 다리 사이로 공을 흘리는 알까기가 일상이고, 평범한 플라이볼도 온 힘을 다해 잡아야 한다. 에이스 투수가 던지는 공은 구속이 얼마인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한 120Km은 나오겠다” 정도다. 엉망진창인 팀이지만, 왠지 작품을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고 응원하게 된다. 마치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보는 느낌이다.

 

 


 

블루엔젤스에는 ‘선출’이 없다. 하다못해 중학교 선수출신도 없다. 야구가 너무 좋았지만 공부를 하느라, 부모님의 반대로, 집이 가난해서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모여서 야구를 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본 훈련 방법을 따라하고, 조깅을 하거나 스윙 훈련, 투구 훈련을 하지만 가장 주된 훈련(?)은 글러브 닦기와 기름 치기다. 보물 같은 글러브를 닦고 끈을 조이는 모습에서는 어떤 의식 같은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나마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프로처럼 체계화된 아름다움은 없지만, 날것 그대로의 열정,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들을 뛰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들의 삶 깊은 곳까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대충 무슨 일을 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지만,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또 어떤 계기로 야구를 시작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주인공 오찬호를 제외하고는 연애사, 가정사 등은 한 겹 너머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작가는 그들을 “동네야구”를 하는 아저씨들로 그리기보다, 아마추어 “야구선수”로 그린다. 신체능력이나 훈련방식, 심지어 가지고 있는 장비들도 프로와는 다르다. 프로는 나무배트를 쓰지만, 이들은 알루미늄 배트를 쓴다. 하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 승리뿐 아니라 경기 자체에 대한 열망은 프로 못지않다. 프로경기는 매일 있지만, 이들의 야구는 주말에 한경기를 치른다. 그 마저도 비가 와서 경기를 할 수 없으면 그 경기는 취소되고, 일주일을 기다린 선수들은 경기를 뛸 수 없게 된다. 그 뿐 아니다. 겨울에는 야구경기를 할 수 없다. 오직 한때, 지금 당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스포츠기 때문에, 아마추어 선수들은 더욱 불타오를 수밖에 없다.

 

<퍼펙트 게임>을 보는 재미

 

그 때문일까, 작품은 내내 시끄럽다. 웹툰을 보는데 시끄럽다는 말이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하다면, 작품의 경기 장면을 직접 보면 이 ‘시끄러움’의 정체를 느낄 수 있다. 사회인 야구는 당연히 해설도 없고, 응원도 가족이나 지인들이 하기 때문에 프로야구처럼 열정적이지 않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는 끊임없이 소리치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김현수 감독은 마치 옛날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쉴 새 없이 선수를 소개하고, 지금 상황을 이야기해준다. 덕분에 독자들은 사회인 야구 경기에 나온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냥 타자’가 아니라 ‘리그의 비린내, 고등어 강’이라는 별명으로, ‘리그의 짠물수비, 정다봉’이라는 특징으로 입체적으로 선수들을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스포츠 만화는 주간연재 최적화된 장르가 아니다. 열심히 뛰는 선수들을 비추다 보면 공 하나하나에 컷이 소모되고, 한권동안 한경기를 치르기도 한다. <슬램덩크>의 경우에는 대 산왕전이 몇권에 걸쳐서 나오기도 한다. 때문에 캐릭터의 입체성을 부여하기가 힘들다. <슬램덩크>에서는 강백호라는 주인공에 집중해서 캐릭터를 쌓아나가고, 인상적인 플레이들을 통해 그에게 입체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퍼펙트 게임>의 블루엔젤스에는 그런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는 딱 한명, 생선가게를 하는 고등어 강 밖에 없다. 게다가 야구는 9명이 함께 뛰는 스포츠다. 때문에 입체성을 입히기가 힘들다. 모두 같은 연출을 사용하는 건 지루하게 비춰질 수도 있다. 그래서 작가는 정면 돌파를 선택한다. 마치 변사처럼 끊임없이 등장인물들에 대해 대놓고 떠드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독자들이 등장인물들을 이해하기 쉽도록 돕는다.

 

 


 

이런 ‘변사’의 역할은, 사실 야구 중계를 보는 야구팬의 모습이기도 하다. 공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며 분노했다가 환호성을 질렀다가 하는 모습이다. 때문에 독자들은 별 것 아닌 사회인 리그의 경기를 손에 땀을 쥐고 볼 수 있게 된다. 매번 자기가 응원하는 팀을 욕하면서도 꾸역꾸역 경기를 챙겨보는 야구팬들의 심정은, 엉망진창 오합지졸인 블루엔젤스를 가슴 뜨겁게 응원하는 독자들의 모습과 닮았다. 스포츠 만화의 미덕은 바로 스포츠의 재미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될 소년의 연대기가 될 수도 있고, 부상을 당하고도 “왼손은 거들 뿐”이라고 중얼거리는 열정일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건 플레이하는 선수들이 얼마나 경기를 즐기는지, 그리고 얼마나 경기에 몰입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퍼펙트 게임>에서, 등장인물들은 실력은 부족할지라도 누구보다 야구를 즐기고 있다. 70km짜리 느린 아리랑 볼에 울었다가, 역전 안타(때로는 에러) 한방에 다시 콧물을 흘리는 모습에 독자들은 빠져들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의 스포츠 정신

 

이들 모두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다. 지금이라도 시장에 가면 만날 수 있고, 주말에 운동장이나 공설 야구장에 가면 모여서 기름을 먹인 글러브를 자랑하는 아저씨들이다. 작가는 그런 ‘평범한 사람’과 ‘시장’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이야기 또한 놓치지 않는다. 블루엔젤스는 말하자면 하늘 재래시장의 상인회와 청년들이 모여 만든 팀이다. 재래시장 부지를 사들여 대형 마트를 짓고자 하는 대기업이 하필이면 블루엔젤스의 에이스 오찬호가 일하는 DM그룹이었다.

 

<퍼펙트 게임>은 하늘 재래시장의 상인들이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처절한 싸움을 그리지 않는다. 마치, 그것이 해결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처럼 5년간의 공백기를 갖는다. 돌아온 3부에서는 고등어 강은 작은 카페를 차렸고, 빵집과 칼국수집은 여전하지만 위치가 바뀌었다. 작가는 그들의 패배를, 또는 작은 승리를 그리지 않는다. 다만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리는 건, DM 직원들이 모여 만든 야구팀 DM 자이언츠와 블루엔젤스의 경기다. 작가가 시장 사람들과 DM의 투쟁을 보여주지 않은 건, 스포츠 만화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너무 불균형하게 맞춰진 싸움이 스포츠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상인들로서는 협상 결과와 상관없이 DM의 임원들을 흠씬 두들겨 패 주고 싶었을 것이다. 얼마간의 보상금을 줄 테니 평생 일궈온 일터를 내놓으라는 말은, 이 사람들에겐 길바닥에 나앉으라는 말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특히나 하늘 재래시장의 상인들은 꾸준히 찾는 단골들과 관계를 맺으며 삶을 유지하고 있는데, 건물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 가능한 대형마트가 들어선다는 말은 충분히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작품에서는 앞서 선수들의 개인사와 마찬가지로 한 꺼풀 너머 아스라이 그들의 싸움을 비출 뿐이다.

 

작가는 대기업이 물러선다거나, 하는 낭만적인 상황은 그리지 않는다. DM은 원하는 것을 얻었고, 상인들은 조금 어려워졌지만 그럭저럭 먹고살 만 한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현실감각은 작가의 전작들인 <파동>과 <미확인 거주물체>에서도 엿볼 수 있는 작가 특유의 서늘한 시선이다. 낭만적인 상황은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낭만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곳은 어디일까? <퍼펙트 게임>에선 당연히 야구장이다.

 

 


 

DM 자이언츠와의 일전은 말 그대로 총력전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압도적 승률로 리그를 연속 제패한 DM 자이언츠가 앞서지만, 엔젤스에겐 이겨야만 할 이유가 있다. 작가는 시즌2의 후반부를 이 두 팀의 경기에 쏟아낸다. 비록 현실에서는 낭만도 없고, 정당한 승부도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싸움일지 모르지만, 이들이 배트와 글러브, 공을 들고 만나는 야구장은 말하자면 다이아몬드의 링이다. 링 밖에서는 이길 수 없었지만, 다이아몬드 모양의 야구장 안에선 이길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들에게 DM과의 싸움은 중요했다. 이렇게 맹렬한 승부욕이 부딪히는 경기에서, <퍼펙트 게임>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빛을 발한다. 경기 내용과 관계없이 순수한 승부의 세계에 몰입한 사람들의 싸움은 반짝반짝 빛난다.

 

즐기는 당신에게 박수를

 

흔히 한국 사회를 두고 “여유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잠시 멈춰서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고. 그래서 이들이 야구를 즐기면서 반짝이는 모습을 보는 독자들은 반짝이는 블루엔젤스의 모습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시간에 쫓기면서도 그 시간을 쪼개 여유를 만들어내는 성실함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정직함은 이 만화의 가장 진한 감동의 베이스가 된다.

 

 


 

작년 이맘때쯤 유행했던 “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이 있다. 흔히 ‘오늘만 사는’ 생활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곤 하는 이 말은,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의미가 좀 달라진다. 즐기기 위해 열심히 시간을 쌓고, 그렇게 즐긴 시간을 모아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을 뜻하는 것처럼 들린다. 굳이 야구가 아니어도 좋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저씨들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끈끈하게 뭉쳐서 하나 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무언가, 다 같이 깊게 몰입해서 옆에서 보기에 반짝이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 그런 것을 찾을 수 있는 삶이라면, 마치 콜드게임을 당한 인도네시아 선수들이 반짝이던 것처럼 멋진 순간을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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