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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12.05 조회수 194

내 인생의 첫 만화 : <신암행어사>

 

강선주(시나리오 작가)

 

나의 어린 시절에 만화책은 결코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어떤 근거로 만화책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만화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 무척이나 ‘착한 아이’였던 나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고, 부모님의 뜻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 이유로 난 매우 늦게 만화책을 접하게 되었다.

나의 첫 만화책은 나보다 2살 많은 오빠로부터 시작 되었다. 당시 기숙사 생활을 했던 오빠는 주말이 되면 집으로 돌아 왔고, 그 때마다 동네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빌려 왔다.

『열혈강호』, 『원피스』를 시작으로 『슬램덩크』, 『드래곤 볼』, 『씨티 헌터』 등 많은 만화책들은 당시 내게 아주 새로운 신세계를 선사하곤 했다. 그 속에 『신암행어사』가 있었다.

 

 

  

 

『신암행어사』는 제목처럼 우리가 알고 있던 암행어사와는 조금 다른 암행어사의 이야기일거라 예상이 된다. 맞다. 『신암행어사』는 그런 유쾌하고 풍자적이며 암행어사에 의해 세상에 정의를 실현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였다.

하지만 조금만 더 그 속을 들여다본다면 암행어사가 지키고자 하는 세상 이상의 그 무엇이 그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일본에서 먼저 출판된 『신암행어사』는 이후 번역되어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재밌는 것은 한국 작가가 쓴 한국의 작품인데 그것이 일본에서 기획되어 먼저 출판되었다는 것이다. 작품의 내용과 캐릭터의 이름들도 모두 한국의 설화, 동화에서 따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신암행어사』에서는 암행어사의 호위무사를 ‘산도’라도 불렀다. 암행어사들은 각자 자신만의 산도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산도는 사람이었고, 누군가의 산도는 동물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악수(惡獸)가 산도가 되기도 했다.

정말 과거에 산도라는 직책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 검색을 해보았다. 산도라는 것은 『신암행어사』에서만 존재하는 직책이었는데 이 이름이 붙여진 이유가 매우 재밌었다. 당시 방영하던 <어사 박문수>라는 드라마에서 박문수를 쫓아다니는 사람 이름이 ‘상도’였다. 그것을 본 작가가 암행어사를 호위하는 무사의 이름을 상도라 붙였는데 이것이 이후 일본어로 번역되며 상도가 ‘산도’로 바뀐 것이다.

이렇듯『신암행어사』란 이렇게 한국의 정서를 품고 있는 한국적인 일본 만화였던 것이다.

 

 

  

 

『신암행어사』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옛날 쥬신이라는 나라에 암행어사라고 불리는 비밀요원이 있었다. 나그네로 가장한 암행어사는 왕의 특사로서 각 지방을 여행하며 부패한 관리들을 찾아내 엄벌하는 일을 하였다. 그러나 쥬신은 아지태에 의한 일련의 사건으로 무너지게 되고, 쥬신의 암행어사들 역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오직 한 명의 암행어사만이 쥬신의 유령 특수부대 ‘팬텀솔져’를 즉시 소환할 수 있는 3마패를 들고 세상을 떠돌았다. 그는 세상에 부패한 관료들을 처단하며, 쥬신을 멸망하게 한 아지태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의 이름이 바로 문수인 것이다.

문수는 우연히 만나게 된 몽룡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하게 되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의 약혼녀 춘향을 악덕 영주로부터 구해준다. 이 일로 춘향은 문수의 산도를 자청하고 그를 따르게 된다. 또한 자신이 모시던 암행어사를 허망하게 잃고 떠돌던 방자 역시 문수가 암행어사라는 것을 알고 그와 동행하게 된다.

 

 

  

 

이렇게 모인 셋은 세상을 떠돌며 문수만의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제한다.

싸움 기술 없이 오직 신념만을 지닌 채 여진족과 싸우는 젊은 영주를 구해주기도 하고, 고려장이라는 이름으로 늙은 부모를 내다 버린 자식들을 처벌하기도 하고, 온달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를 사랑하며 환상 속에 살고 있는 평강에게 현실을 일깨워 고구려를 세우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만다라케 침을 맞고 환각에 빠져 있는 소년을 따라가 그를 홀린 악마를 단죄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수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지태였다. 고운 외모와 말솜씨와는 다르게 마음속에 추악함을 담고 있는 악마 아지태.

그는 문수가 서양에 가 있는 사이 쥬신의 왕이자 문수의 벗인 해모수를 잡아먹고 대신 왕의 자리에 올랐다. 거기에 문수가 사랑했던 여인 계월향마저 왕비로 맞이한 후 처참하게 죽게 했다.

그렇게 아지태가 쥬신을 멸망시킨 지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또 다시 세상을 무()로 돌리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수는 세상을 지키기 위해,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불태우며 아지태를 막으려 애쓴다.

 

 

  

 

문수는 참으로 독특한 캐릭터다. 암행어사의 마패를 들고 다니며 부패한 세상을 처단하고 다녔지만 영웅의 선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악을 처단할 수만 있다만 문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악을 처단하기 위해서 스스로 악이 되기도 하였다.

문수는 보이는 것이 어떠하든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철학이 있었다. 자신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현재 순간의 정의로움과 선함은 잠시 접어두어도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17권으로 이루어지는 이 작품에서 문수는 내내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본질’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보고자 하는 것을 보려고 하기 때문에 본질은 변하기 마련’이라고 주장하는 아지태와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본질(本質)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외모가 변하고, 말투와 행동이 달라질지라도 그 사람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 종종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서 어렸을 적엔 몰랐던 모습들을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친구들은 나이가 들면서 변한 것이 아니라 좀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지며 자기다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이 그에게 새롭게 생긴 성질이 아니라 그가 원래 가졌던 본질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 본질을 알지 못한 채 친구가 된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이미 상대의 본질을 받아들였기에 그와 함께 늙어가고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친구들에게서 느꼈던 그런 감정을 친구들도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나의 본질은 무엇일지 고민해 보게 된다.

 

가끔은 넘쳐나는 많은 흥밋거리들에 의해 정작 관심을 가졌어야 할 나란 존재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얼마 전 나의 오랜 친구가 주말에 자신의 자아를 찾게 해주는 프로그램에 등록했다고 알려왔다. 늘 갈팡질팡 흔들리는 내게 어떤 길이 더 올바른 길인지, 무엇이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인지 조언을 해주던 친구인지라 그녀가 그런 프로그램에 등록했다는 것이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어쩜 난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100% 다 이해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적어도 그 친구만큼은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기에 그리도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라 단정지어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친구가 등록한 프로그램에서는 매일 매일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미션을 주었다. 언제 행복한지,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는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무엇인지.

친구는 그 미션의 답을 찾는 일에 굉장한 어려움을 느꼈다. 나 또한 친구의 답을 그리고 나의 답을 고민하며 나의 본질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작 평생을 단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하는 나의 존재에 대해, 늘 함께 있다는 핑계로 등한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본질에 대한 해답들은 교과서에서도, 부모님조차 알려주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나의 본질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난감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암행어사』가 주는 그 메시지가 더 와 닿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문수가 말하는 본질이라는 것이 우리 인생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암행어사』에서 계월향의 언니가 계월향에게 왜 문수가 사랑하는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계월향은 문수가 아카시아 나무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과거 마을에 너무 자라 보기 흉해진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베어버리자고 했다. 문수는 자연의 것을 인간의 잣대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의 의견에 반대했고, 결국 나무를 지켜냈다. 몇 해 뒤 그 마을에 홍수가 났다. 하지만 문수가 지켜낸 아카시아 나무 덕분에 마을은 산사태가 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문수는 자신의 확신의 뿌리가 깊다면 언젠가 그 진실이 통한다고 말했다. 계월향은 언니에게 문수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뿌리가 깊은 사람이고, 그렇게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했다.

뿌리가 깊다는 것은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마음에 있다. 문수가 지켜낸 아카시아 나무처럼 때론 자신의 형태대로 거칠게 자라 보기 흉해졌을지라도 그 본질이 흉해지지 않았다면 그것이 세상을 구하고 타인에게 이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타인과 같지 않다는 이유로 비판받는다면 그 누구도 그 자체의 온전한 본질을 보호받기 어려울 것이다.

 

 

  

 

살면 살수록 깨닫게 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나란 존재가 가지고 있는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스스로에 대해 잘 알게 된다면 내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아카시아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더 단단한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이런 가르침을 준 세상에 존재했던 유일한 암행어사 문수는 두 팔이 잘리고 두 눈이 멀어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가 가진 본질을 좋아하고 이해하고 있기에 아직도 그를 세상 속 유일한 암행어사로 기억하고 있다.

 

『신암행어사』는 내게 교과서에서 배운 세상 그 이상을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알려주었다. 교묘하게 어긋나 있고, 때로는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의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것이 더 나와 가까운 현실이고, 진실에 가까웠다.

내 인생에 첫 번째로 존재해 준 『신암행어사』 덕분에 나는 현재의 내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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