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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1.31 조회수 3,247
1991년~2000년 빛과 그림자의 시대, 풍성한 만화의 유산

1990년대 한국만화는 극명하게 명암이 엇갈리는 시대였다. 한국만화의 성장이라는 축복이 오는가 싶더니 이내 암흑기에 접어들어 세기말의 혼란에 빠지며 20세기를 마감했다.

시중 만화잡지는 30여 종을 넘었고 국립 공주대학을 시작(1990)으로 각 대학에 만화관련 학과가 신설되었다. 일본만화 <드래곤볼>, <슬램덩크>와 같은 메가 히트작이 유입되어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만화시장의 파이가 커지게 되었다. 한국만화가 위협을 받았지만 좋은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 잡지 시스템을 모방해 고연령층 잡지도 선을 보였으며, 1990년대 한국의 대중문화의 풍성한 결실처럼 만화도 다양한 실험과 도전이 이어졌다. 젠더의 시각으로 본 여성만화 창작이 이어졌고, 실험만화도 이전의 민중만화와는 궤를 달리하는 보다 대중적이면서도 파격적인 작품들이 동인지를 중심으로 발표되었다.

만화평론가협회가 발족(1994)해 이론적 담론도 풍성해 졌으며, 만화관련 기관과 행사도 뒤를 이었다. 비록 운동장 한켠이긴 하지만 한국 최초로 부천에 만화정보센터가 설립되었다. 이는 우리사회가 공공의 영역에서 만화 매체를 인정한 사건이자 주요산업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국제적으로 한국만화를 선보이는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가 열리기 시작했으며, 이미 1995년 SICAF(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서울시 주최로 열려 만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확산시켰다. 1998년에는 부천에서 PISAF(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까지 열려 한국의 3대 만화 애니메이션 행사가 모두 90년대에 탄생했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안팎에서 옥죄는 굴레와 충격이 허약한 기반의 만화계에 전해졌다. 청소년보호법이 발효(1997)되었고 스포츠신문 만화에 대해 사정기관의 탄압(1997)이 이어졌다. 그리고 뒤이어 IMF(1997)가 급습하면서 갓 부흥의 터전을 잡았던 한국만화는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가장 큰 결정타는 만화를 단순히 빌려주는 대여점이 전국 곳곳에 등장한 것이다. 만화가들은 그야말로 빈사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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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2000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전체적인 평가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격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반의 공백을 깨고 1994년 11월 5일 개봉한 성인용 <블루시걸>, 1995년에는 <헝그리 베스트5>와 <붉은 매>, <돌아온 영웅>과 1996년 개봉한  <아마게돈>,  <왕후 에스더>, 1997년 <충무공 이순신 난중일기>, <의적 임꺽정>, <전사 라이언>, <예수>, <또또와 친구들>, 1999년 <철인사천왕> 등 많은 작품들이 제작 개봉되었지만 대부분 흥행 실패로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런 애니메이션의 참패 분위기 속에서도 1996년 7월 26일 개봉한 <아리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은 흥행 성공의 신화를 재현하였다. 이미 독자층과 캐릭터를 인지하고 좋아하는 관객을 확보한 기본에 애니메이션을 추가 제작함으로써 대박 성공을 거둔 좋은 사례로 분석되어야 할 부분이다. 최근 인기도서의 독자층을 겨냥해서 극장용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마당을 나온 암탉, 2011>이나 인기 웹툰의 독자층을 확보한 상황에서 영화로 성공한 <그대를 사랑합니다, 2010>, 2014년 드라마로 제작된 <미생>은 이러한 <둘리>의 전작을 본보기로 한 좋은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장편 만화의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전환에 대한 매체별 각색, 연출 촬영 등에 대한 섬세한 차이점을 고려치 않았던 1996년 개봉애니메이션 <아마게돈>의 이현세 감독의 경우는 예외로 하여야 할 것이다. 
 만화 원작에 대한 애니메이션 제작과 캐릭터 상품까지 연계한 원소스 멀티유저 머천다이징 전략은 1990년대 극장용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방송용 애니메이션에서는 적중하여 1991년 <요정핑크>(1986년 김동화 《보물섬》 연재만화), <날아라 슈퍼보드2>(1989 허영만 원작만화 ‘미스터 손’), <장독대>(이두호 원작만화), <흙꼭두 장군>(김병규 창작동화 ‘까만 수레를 탄 흙꼭두 장군’) 1992년 <펭킹 라이킹(김영하의 《보물섬》 연재만화 ‘고봉이와 페페‘), <꿀벌의 친구>(배익천 원작동화), 1993년 <마법사 코리>(고행석 원작만화), 1994년 <사랑의 학교>(이원복 원작만화), 1996년 <두치와 뿌꾸>(1995년 김재원 《팡팡》 연재만화 큐라큐라)>, 1997년 <귀여운 쪼꼬미>(1989년, 김수정 동명만화), <녹색전차 해모수>(1996년 김재환 《찬스》 연재만화 컴벳메탈 해모수), 1998년 <바이오캅 윙고>(1998년 주성윤 만화), 1999년 <검정고무신>(1992년 도래미(이영일) 글, 이우영 그림 연재만화) 등 많은 작품들이 제작 방영되어 안방의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주었고 캐릭터 상품시장도 활성화 된 호시기였다.
 
흥행결과를 놓고 10년간을 분석 해보면, 연재만화의 긴 스토리와 많은 에피소드를 1시간 남짓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압축해서 풀어내야 하는 각색의 어려움, 어린이들이 텔레비전을 접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던 1990년대의 매체의 헤게모니 등 시대적 패러다임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시장상황 등에 대한 여러 가지의 조건을 제작에 우선해서 고려해야 한다는 애니메이션의 프로듀싱과 마케팅의 아픈 교훈을 남긴 1990년대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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