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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9.17 조회수 158

나 없는 가족에서 나를 사랑하는 가족 만들기

- 현대 사회를 반영한 만화 속 가족

 

김상희(만화평론가)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서 말하길, 모든 행복한 가족은 비슷비슷하지만 모든 불행한 가족에겐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고 했다. 온갖 불행의 숨결을 멀리하려고 제아무리 노력해도 ‘홈 스위트 홈’을 구현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양극화가 치닫는 이 때, 세대별, 성별의 갈등과 증오가 끓어오르는 상황 속에서 가족이 지닌 성스러운 온기를 찾기란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또한 임산부와 어린이, 노약자와 장애인을 향한 차가운 시선이 강력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근시안적인 해결방법을 반복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분명하게도 한국사회가 여겨왔던 가족의 고전적 가치관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을 비롯한 여러 면들이 그 보폭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가족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형태와 속성이 모조리 변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면 무엇이 그 흐름에 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누구를 위하여 가족이 되는가? - 가족의 탄생

 

한국사회에서 제도권의 보호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가족을 만들려면 전통적인 남녀결혼을 통해서 혈연으로 구성원을 늘리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이혼율의 증가와 비혼 층이 확대되면서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과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이라는 자료를 보면, 배우자와의 관계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남성은 71.3%, 여성은 58.5%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혼인건수도 2015년에는 약 30만 명에서 2016년에는 약 28만 명, 2017년에는 약 26만 명으로 줄어들고 있다.

 

자료출처 : 통계청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이러한 원인에는 사회, 경제적으로 다양하고 매우 복잡한 이유가 유기적으로 얽혀있다. 최근 한 야당 의원이 저출산 현상의 원인을 젊은 세대의 이기심으로 치부하는 발언으로 뭇매를 맞은 사건만 보아도 한국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으로 가족을 이루는 어려움이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난해, 온라인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수신지의 <며느라기>는 결혼과 시집살이를 통과하는 현대 한국 여성이 겪을 법할 일을 사실적으로 그려 여성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나아가 <며느라기>는 한국에서 결혼으로 가족을 형성하는 과정이 여전히 구시대적이고 가부장적인 현실을 벗어나지 못함을 꼬집기도 한다. 주인공 민사린은 남편과 시댁식구들에게 좋은 며느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의문과 회의가 들 뿐이다. 난 도대체 누굴 위한 며느리인걸까?

최근 다음웹툰에서 <술꾼도시처녀들>의 미깡이 발표한 후속작 <하면 좋습니까?>도 이와 같은 형태의 결혼과 가족구성의 당위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애인과 동거중인 심연은 갑자기 프러포즈를 받는다. 그러나 심연의 주위에는 이혼과 신혼과 비혼, 육아를 겪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심연은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결혼 전 양해각서를 써보기로 한다. 그리고 시뮬레이션 훈련에 돌입한다.

 

 


 

과거 전통적인 결혼과 출산으로 가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겪는 가부장적 인습과 고부간의 갈등은 가족 간의 문제로 치부됐다. 이른바 벙어리, 귀머거리, 장님 3년 세트의 속담은 마땅히 며느리로 대표되는 신입 구성원이 견뎌야 할 인고의 희생을 의미했다. 이런 고난의 터널을 통과한 끝에 얻는 가족의 평안이라는 가치로 돌아가던 전통적인 한국가정이 시대적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전통적인 결혼으로 확장되는 가족의 형태를 젊은 세대가 꺼리는 이유는 새로운 구성원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일방적이고 억압적일 때가 많다는 점이다. <며느라기>에서 민사린은 시댁의 가족구성원으로써 남편 식사와 시댁 행사를 사린의 사회생활보다 우선해야 하는 암묵적 억압에 갈등한다. 건강한 성인이자 성실한 사회인이라는 위치 따윈 중요하지 않다. 그저 며느리란 이유만으로 오로지 앞치마의 의무만 지우려 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누구를 먼저 보살펴야 하는가’를 자문하게 된다.

 

최근 고부갈등, 장서갈등과 같은 문제가 가부장적인 억압과 부당한 성차별로 인식하고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결혼과 가족의 고민을 하게 됐다.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과 인내로 움직이는 가족이 되는 결합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함을 깨달은 것이다. 더구나 결혼과 동시에 돈벌이와 집안일, 출산과 육아 등을 여성에게만 떠넘긴다면 과연 그 가족의 일원이 되려고 선뜻 나설 수 있을까?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과정에서 그 중 가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이렇게 일방적인 갈등이 더해진다면 쉽게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사회는 남자 가장 1인 중심의 가정을 기본단위로 여기며 결혼제도로 맺어지지 않은 가정은 기본적인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깡의 <하면 좋습니까?>에서 심연이 급작스럽게 수술을 해야 할 때 혈연가족이나 법적 배우자의 동의가 없어서 부모님을 불러야 하는 장면은 실제 성소수자 커플들의 어려움이기도 하다. 이처럼 실제 가족처럼 산다고 해도 제도권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가장 기본적인 인권과 복지의 사각지대로 배제된다. 이렇듯 가족의 개념이 구시대적이고 폐쇄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이어진다면 현실과의 괴리가 불가피할 것이고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세대의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이외에도 신혼부부의 결혼과 출산, 육아과정을 그린 <유부녀의 탄생> 시리즈나 임신과 출산과정 속에서 임산부의 변화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아기 낳는 만화>처럼 신혼부부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드러내기도 한다. 결혼은 신성한 것이며 임신과 출산은 위대한 모성의 첫걸음이라는 편견이 당사자들 특히 여성들에게는 무거운 족쇄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달달한 신혼생활을 강조한 웹툰보다 이렇듯 실생활이 도드라져 보이는 만화가 마음을 조금 무겁게 하면서도 깊은 공감을 준다.

 

 


 

과거 가족을 위해 구성원 모두 희생을 감수하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자 커다란 가치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장기적인 경제 불황과 개인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적 변화로 무조건적인 희생이 미덕이 되지 못한다. 구성원 모두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가족이야말로 지금의 우리사회가 가야할 가족의 가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이별할 수 있나요? - 가족의 파괴와 상실

 

가족이 가진 위대한 가치는 그 안에서 안전하고 보호받는다는 점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권리가 있으며 가족은 그 권리의 시작점이어야 한다고 여기기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최근 뉴스면을 장식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정폭력 소식은 그런 믿음을 뿌리 채 흔든다. 가장 보호받아야할 곳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오랜 상처를 지니고 살아야하는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족이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되새기게 만든다.

 

2017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가정폭력사건 발생건수가 2013년에는 16,785건, 2014년에는 17,557건, 2015년에는 40,828건, 2016년에는 45,619건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원인에는 여러 분석이 있겠지만 더 이상 집안일이라 치부하며 참고 견디지 않고 바깥으로 드러내겠다는 분위기와도 연결될 것이다. 가정폭력이 처벌받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피해자가 가해자와 분리될 수 없는 상황, 사생활이라는 이유와 편견 등으로 인해 그 동안 일부의 공권력마저도 방치시켰기 때문이다. 이렇듯 전문가들은 가정에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건들이 최근 들어 급증했다기보다는 빙산의 일각처럼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제라도 용감하게 신고하고 적극적으로 구제를 받으려는 흐름에 맞춰서 안 보려고 했던 상처가 드러나는 것이다.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사고는 전체 사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족의 비극이 곧 사회의 문제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살인, 성폭력과 같은 생명경시와 인륜을 저버리는 강력범죄가 가족 안에서 벌어질 때 더 공분을 사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가족 안에서는 보호받고 인정받으며 서로를 돌봐야함에도 비극적인 범죄의 온상으로 변질시켜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준다면 그 누구도 가족의 가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가정폭력의 피해를 고발하고 고백하는 만화가 각광받고 있는 가운데 그 중 가장 화제는 단지의 <단지>다. 연재 당시 최단기간 최다 조회 수를 기록하며 독자들에게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단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정폭력이라는 비극적이고 불편한 소재를 리얼리티가 생생한 작가의 고백으로 그려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로써의 고백을 응원하는 목소리와 가족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비난이 동시에 일어나자 단숨에 가정폭력의 문제를 문화적 이슈로 끌어올렸다.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피해의 기억마저 봉인한 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야했던 피해자들의 공감을 모아서 <단지> 단행본 2권에서는 다른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아 소개했다. 평생 숨기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공개될 수 있었던 건 가정폭력이 더 이상 함구해야할 치부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극복하고 치유해야할 상처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적 담론으로써 모두가 해결해야 할 범죄이자 문제라고 여기게 된 시작점이 됐다.

 

 


 

가정폭력의 가장 안타까운 점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지붕 아래 분리되지 못하고 지내야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벌어지는 폭력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익숙해지고 또 다른 상처받은 가족을 양산시키기도 한다. 외부의 손길이 아니면 스스로 빠져나오기 힘든 구조에서 겪는 상처는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상처는 피해자의 곳곳에 흔적을 남기게 되고 인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작가들의 이러한 고발에 가까운 작품들을 볼 때면 그런 흔적과 여전히 싸우는 진행 중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작가들의 고백을 담은 작품들이 사회적, 비평적인 면에서 큰 화제가 된 이유는 가족 간의 폭력과 아픔을 숨기지 않고 극복하고 나아가기 위한 노력임을 모두가 공감하고 응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 고백적 요소가 담김 만화가 등장하면서 친족 내 성폭력과 아동 방치, 유기와 같은 가정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독자들에게는 오래도록 아물지 못한 상처와 고통스러운 기억을 극복하고 행복을 위해 한걸음 나아가려는 주인공을 통해서 감동과 응원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서 사회적으로는 가정폭력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우리 주위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임을 일깨워줬다.

 

<여중생A>, <그래도 되는가>, <땅보고 걷는 아이>와 같은 웹툰을 통해서 가해자와의 관계와 가족의 평화를 이유로 피해자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또한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을 그리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가족 간의 관계는 자아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가족의 행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인식은 이제 구시대적인 것이 됐다. 자아가 파괴되고 가족이 아닌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없는 이유가 친족폭력이 원인이라면 이제는 그런 가족과 관계를 끊는 게 더 건강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오히려 그것이 더 성숙한 자세라고 말한다. 독립이란 악화된 관계를 끊고 더 나은 자신을 만나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가정폭력 신고수가 증가한 것은 가정폭력을 범죄로 인식하고 법의 처벌을 받아야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과 연관된다. 가장으로써의 어려움이나 궁핍한 가정환경을 빌미로 정당화됐던 가정폭력을 참아내지 않겠다는 피해자들의 선언이기도 하다. 어리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가족이기 때문에 부당하게 피 흘리며 감내해야 했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불편해도 경청해야할 때이다.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누구나 작별을 준비해야 하고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피와 땀과 눈물을 오랜 세월동안 나눈 가족과 헤어진다는 건 그 어느 때라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갑작스런 사고와 재난으로 가족을 잃게 될 경우, 그 충격은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족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무척 큰 충격이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가 된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깊은 좌절과 우울로 또 다른 비극으로 연결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도 고령화인구가 늘면서 노년층의 질병관리가 이슈가 됨에 따라 가족을 돌보면서 이별을 준비는 시간은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기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질병과 간병으로 천천히 작별을 준비하는 과정은 가족과 구성원의 의미,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돌보고 돌봐 줘야 하는 가족들 모두 서로에게 느끼는 낯설고 슬픈 상황에 불안과 분노를 거쳐 애증과 포용으로 이뤄지는 과정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본격적으로 노년층의 실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또한 치매를 앓는 아내를 돌보는 할아버지를 통해서 중증환자를 가족으로 둔 빈곤가정의 현실을 보여준다. 병든 가족을 돌봐야 하는 궁핍한 노인가구의 생활을 통해서 가족과 이웃의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이외에도 김보통의 <아만자>, 수신지의 <3그램>과 같이 직간접으로 경험한 암투병을 소재로 한 만화를 발표해서 독자의 공감을 얻은 바 있다. 고통스러운 투병생활 속에서도 유머와 상상으로 고통을 극복하고 나와 가족 간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두 만화는 신파적으로 투병생활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만화적인 재미와 유머를 살림으로써 암환자라는 부담스런 소재를 독자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그렸다. 엘리슨 벡델의 <펀홈>도 아버지와 자신의 성정체성 문제를 비롯한 오랜 갈등의 원인을 아버지의 죽음 후에야 돌아보게 되는 내용으로 가족의 상실을 통해서 작가의 본질적 자아를 되짚어 가는 경험을 그리고 있다.

 

 


 

가족의 사랑이 현실적인 문제에 생존으로 치닫게 되면 인간적인 이기적인 모습이 튀어나오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면들이 잔인하지만 어쩔 수 없는 면으로 일축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족애라는 미명아래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가족의 위기를 통해서 구성원들의 위선적인 가면이 벗겨지기도 하지만 그 중 가족의 상실로 현실적으로나 심적으로 큰 고통을 겪을 때 비로소 극명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무조건 받아들이고 포용해 줄 것 같은 가족마저도 한계를 목격하고 완벽하지 않은 인간임을 깨달음으로써 그 안에서 이해와 포용으로 손을 내밀게 된다.

 

우리도 가족이다 - 가족의 다양한 형태를 찾아서

 

비혼주의와 다양한 사람들로 이뤄진 공동체가 가족과 같은 역할을 하는 건 모든 이야기의 소재가 된다. 특히 독특한 처지에 처한 주인공들이 모여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고 함께 연대하는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공감을 얻는다.

 

만화 속에서도 1인가구라고 할 수 있는 싱글남녀들의 이야기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특히 싱글녀들의 애환을 그린 만화들이 많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혼과 출산이라는 문턱에서 고민하는 요즘 세태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1인가구가 늘어남에 따라 싱글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거나 공감대를 형성하며 지내는 경우도 있다. 쉐어하우스와 같은 주거형태로 공간을 공유하거나 온라인으로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한다. 1인 가구에서 확장된 비혈연가족의 등장은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더라도 서로의 목적과 상황을 공감하고 연대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이런 모습은 만화 속에서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그 중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생활웹툰이나 자녀가 없는 독립된 신혼부부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생활을 그린 만화들이 대표적이다.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만화에도 가족이 등장하지만 작가들이 드러내는 주제는 반려동물과의 관찰과 관계형성이 주제다. <뽀짜툰>, <극한견주>와 같은 만화에서의 강아지와 고양이는 가족 그 자체이다. 특히 반려동물의 수발 아닌 수발을 통해서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족애가 없으면 불가능할 정도로 인내심과 애정이 드러난다. 이처럼 끊임없이 애정과 손길을 필요로 하는 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며 함께 생활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아무런 계산 없이 사랑과 관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순수한 관계 맺기가 인간과 동물에서 더 잘 일어날 수 있다는 현실이 여러 생각을 갖게 한다.

 

 


 

또한 성소수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만화가 있는데 이런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서 인생의 파트너로 살아가고 싶어도 불편한 제도적 여건과 사회적 시선 때문에 갈등을 겪는 모습에서 가족의 또 다른 형태를 만날 수 있다. 다음 웹툰 리그에 연재된 국수의 <게으른 레즈비언> 1부는 레즈비언 커플이 만남과 동거에 이르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줬다.

 

 


 

마음으로 받아들인 타인을 가족으로 여기는 것에는 많은 애정과 수고가 동반된다. 그런 고된 과정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매 순간을 감사해하며 지내는 이들이야말로 어쩌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이들은 가족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참고 양보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언제나 포용의 자세로 임하며 지속적으로 대화와 소통에 나서고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데 능숙하다. 가장 또한 가족을 위해서라면 강력하지만 관대한 자세로 구성원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지도력을 펼친다. 늑대 가족의 이야기다. 인간가족과 늑대가족의 공통점은 가족 구성원을 위해 희생을 한다는 점이라고 한다. 인간과 가장 비슷하다고 알려진 침팬지도 아이와 노인을 돌보지 않는다고 한다. 오직 인간과 늑대만이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최우선으로 둘 줄 안다.

그럼에도 완벽한 가족은 없다. 가족을 정확히 무어라고 정의할 그 근거가 고대 인류의 탄생부터 지금 초고도 사회에 이르러 끊임없이 변화와 진화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가 그 예이다. 혈연관계도 아니고, 도덕적이거나 선행을 추구하지도 않지만 서로를 착취하거나 억압하지도 않는 그렇다고 애정이 없는 것도 아닌 가족이 등장한다. 돌아가신 부모의 연금을 부정 수급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가족과 구성원의 의미에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가 무엇으로 이뤄지고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가족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가족을 이루며 어떤 사회를 향해서 가고 있는가?

 

 


 

만화 속에는 이런 현실을 반영한 다양한 가족이 등장한다. 작가의 경험과 현실을 비추어 공감과 이해를 얻거나 상상력의 산물로써 뜨거운 감정을 담기도 하다. 그러나 가족을 그린 만화의 끝은, 그 지향점은 행복이다. 개인의 행복과 안위가 우선으로 여겨지는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의 가족은 행복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 있어 가족의 가치는 영원불변에 가까웠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한 몫을 하는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가족 안에서의 교육과 성장이 필요하며 그것이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변하면서 가족 또한 변하고 있다. 시간 앞에 장사 없고 영원한 것도 없겠지만 마음의 고향이자 안식처가 될 가족마저도 변화하는 중이다. 슬프지만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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