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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6.21 조회수 590

<커버스토리>

 

한국 만화, 북한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성상민 (문화평론가)

 

대체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2018년 상반기에 남북한이 10년 만에 다시 정상회담을 가지고, 북한과 미국이 사상 최초로 정상회담을 진행할 것이라 말이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한 명이 북한군 경비병의 총에 맞아 사망한 이후 남북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된 지난 10년간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2000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이후 모두가 꿈에 부풀어 하던 남북 화합은 산산조각이 난지 오래가 되었다. 그 누구도 감히 남북이 다시 화합을 논의할 것이라고 상상조차 쉽지 않았다. 부분적으로 정부의 개입이 있었음이 밝혀졌지만, 영화 <연평해전>(2015)이나 <인천상륙작전>(2016) 같이 남북의 갈등을 비추며 서로에 대한 증오를 양산시켰던 작품이 제작되며 흥행에도 성공했던 것은 당시 기층의 정서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북의 화합을 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은 극적인 계기로 서로에 대한 끊임없는 증오를 중단하는 것에 상호 간의 동의를 확인했다. 아직 완전치는 않아도, 여러 ‘이벤트’를 통해 화합의 물꼬를 멈추지 않을 것을 보여준 만큼 큰 사건-사고가 있지 않고서는 이 물결은 한동안은 지속될 것이다. 벌써부터 영화계는 한국영화 탄생 100년을 맞는 2019년을 전후하여 남북 영화 교류를 추진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문학계 역시 2009년까지 발행되었던 남북 공동 문예지 『통일문학』의 간행 재개를 추진하는 등 북한과의 소통을 다시금 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만화는 어떠한 미래를 상상하며 펼칠 수 있을까.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를 반추하고, 현재를 마주할 필요가 있다. 한국 만화가 북한을 바라봤던 시선을 복기하며, 한국 만화가 걸을 수 있는 길을 생각해보자.

 

‘반공’과 ‘화합’의 갈림길에 놓였던 한국 만화

 

1980년대까지 한국 만화가 북한을 대했던 방식은 철저히 ‘반공주의’에 입각한 시선이었다.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한국 전쟁은 누구의 승리나 패배도 아닌 정전(停戰)으로 마무리되었다. 전쟁이 낳은 감정의 골은 대중문화의 최전선에 놓여있는 만화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주었다. 한상정 만화평론가는 자신의 논문 「1960년대 한국만화에서 드러난 반공주의의 몇 가지 양태」(2009)를 통하여 한국 만화에서 반공주의가 작품의 주된 서사에 직접적으로 깔려 있거나, 설사 메인 스토리가 아니더라도 부차적인 서사나 장식적인 표현을 통해 반공이 드러나는 경우가 다반사였음을 말했다.

직접적으로 북한 정권 또는 북한군과 대치하는 것은 물론, 직접적으로 북한과 관계없어 보이는 SF나 드라마와 같은 장르에도 어김없이 반공에 대한 요소가 반복하여 삽입되었다. 심지어는 박부길의 <김일성의 밀실>(1975) 같이 철저히 성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제작된 성인 만화에도 반공의 요소가 개입될 정도였다. ‘반공을 제일의 국시’로 삼았던 군사 정권은 일상적으로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이데올로기를 심기에 바빴고, 한국 전쟁의 충격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 사회는 이에 충실하게 호응했다.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소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만화 역시 철저히 반공이라는 국시를 함양하는 도구로써 맹활약을 하였다.

 

[사진 1] 박부길의 <김일성의 밀실>(1975) 표지. 성인 만화로써 반공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

표지에서부터 직접적으로 당대 유행하던 ‘가짜 김일성 음모론’까지 삽입되어 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접어들며 상황은 조금씩 달라진다. 강도 높은 핍박 속에서도 민주화 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 운동은 끝끝내 민중을 향해 뿌리를 내렸다. 사회 전반이 군사 정권의 이데올로기에 뒤덮인 가운데 이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서는 대중 매체를 효과적으로 활용해야만 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나 ‘꽃다지’를 비롯한 민중가요패가 결성되고, ‘장산곶매’나 ‘서울영상집단’ 등의 영상패가 결성되었던 것처럼 만화 역시 사회 운동이 민중과 함께 호흡하는 하나의 대안적인 통로가 되었다. 또한 민중가요나 민중영화, 민중미술이 그러하였듯 사회 운동의 흐름 아래서 탄생한 ‘민중만화’ 역시 정부의 핏발 어린 사전 검열 아래 금기시되던 주제인 노동권, 미국과의 주체적인 관계 설정, 그리고 남북의 화합을 말하기 시작했다.

당시 ‘민중만화’에 참여하던 사람들은 크게 세 분류로 나눌 수 있다. 한국기독교농민회, 가톨릭농민회를 비롯해 꾸준히 만화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들을 전달하는 단체들이 있었다. 또한 이미 데뷔한 상태였지만 꾸준히 사회 현실에 관심을 보여 왔던 이희재, 이두호와 같은 작가들도 있었다. 여기에 정부의 사전 검열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언더그라운드에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던 주완수, 최정현, 이은홍 등의 만화가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저마다 각자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만화의 방식으로 현실의 문제를 꼬집고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 했다. 비록 ‘형식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에서 그쳤지만, 6월 민주항쟁으로 한국 사회에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자 수면 아래에서 유통되던 민중만화 일부는 주완수의 <보통 고릴라>(1988), 최정현의 <민주주의를 위해 포기하세요>(1989)처럼 단행본으로 발간되기도 하였다.

 

[사진 2] 만화가 최정현이 ‘반쪽이’라는 가명을 통해 월간 <말> 등지에 발표한 통일을 주제로 삼은 만평,

이 작업들은 당시로써는 정부의 사전 검열을 거치지 않았기에 철저히 시위 현장을 비롯한 지하를 통해서 유통되었다.

 

이후 1990년대에 접어들며 북한을 바라보던 한국 만화의 시선은 과도기에 직면하였다.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변화에 불과했지만, ‘보통 사람’을 강조하던 노태우 정부와 ‘문민 인사’를 강조하던 김영삼 정권이 출범한 이후로 한국 사회에는 이전보다 유화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서슬 퍼런 눈을 부라리고, 사전 검열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지만 더 이상 1980년대처럼 반공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대중 매체를 통해 설파하기엔 어려운 시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곧 민중만화에도 고스란히 타격이 되었다. 1989년 동독과 서독을 가르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한국에서도 남북을 가르는 38선이 무너지길 바랐던 이들은, 1990년대 초 소련이 해체되자 이데올로기의 진공 상태에 놓여 갈 길을 순간적으로 잃고 말았다. 지속적으로 리플렛이나 만평을 통해 민중만화의 흐름을 이어나가는 것은 물론, 통일과 남북 화합을 말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졌지만 1980년대만큼의 호응을 얻기엔 더 이상 불가능한 상황이 도래했다.

남북 간의 경직된 관계와 군사적 대치가 꾸준히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작 만화를 비롯한 대중 매체들은 이에 대해서 변화의 목소리를 이전보다도 내기 어려운 환경에 놓였다. 하지만 변화한 환경 이상으로 북한을 말하는 만화 전반이 지속적으로 놓인 한계는 ‘서사’의 부재였다. 반공을 말하는 작품도, 통일을 말하는 작품도 직설적인 프로파간다를 넘지 못했다. 반공을 전면에 내세웠던 만화들은 모든 서사를 반공에 짜 맞출 따름이었고, 통일과 화합의 중요성을 말하는 만화에는 그 속에 담긴 주장에는 분명 의의가 있었지만 만평 이상으로 풍부한 서사와 연출을 접목시키는 단계로는 진전하지 못했다. 노동 운동이나 빈민 운동의 메시지가 오세영, 이희재 등의 작가를 통해 다채로운 연출과 서사의 안에서 독자의 시선을 이끌고, 1980년대 당시로써는 결코 펼치기 쉽지 않았던 ‘반핵’에 대한 이야기도 신기활의 <핵충이 나타났다!>(1989) 같은 풍자극으로 드러냈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다. 어떻게 보자면, 노동이나 빈민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금기시되었던 소재가 통일과 북한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화가 오영진, 생생한 시선으로 북한을 들여다보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이 당선되고, 2000년 사상 최초로 남북 간의 정상회담이 개최된 이후에도 만화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은 계속 고착된 그대로였다. 1997년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통해 사전 검열은 폐지되었고, 오랜 시간 민중만화를 그리던 작가들은 정권의 감시에서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만화문화연구원의 주최로 1998년 개최된 제 8회 서울국제만화전에서는 직접적으로 ‘남북 통일’을 주제로 삼은 공모 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렇게 점차 북한은 한국 사회의 금기에서 자유로워졌지만, 한국 만화는 여전히 ‘북한’과 ‘통일’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했다. 그나마 2001년 서울문화사 『영 점프』를 통해 연재된 통일 이후 한국의 모습을 SF로 그려낸 유상모의 <안티코리아>와 같은 작품이 발표되었지만, 이렇다 한 호응을 끌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작중에서 북한을 표현하는 방식도 천편일률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일방적인 적대가 누그러진 시대, 북한을 만화로 말하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2004년, ‘보통시민 오씨의 548일 북한체류기’라는 이름 아래 단행본 <남쪽손님>과 <빗장열기>를 동시에 발간한 오영진이 바로 그러한 작가였다. 오영진은 1989년 대학 만화 동아리에 가입한 이래 『히스테리』와 『COMIX』 등의 매체를 통해 독립만화를 그려왔던 만화가이자, 동시에 1997년부터는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해 직장인으로 활동하던 ‘투잡’ 작가였다. 한국전력공사 직원이 된 건 어디까지나 오영진 본인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 길은 뜻하지 않게 오영진 본인은 물론 한국 만화계 전체에 파장을 주는 사건을 낳았다.

 

[사진 3] 오영진의 <남쪽손님>, <빗장열기>(2004) 표지.

 

처음으로 북한 핵 문제가 불거진 1990년대, 한국을 비롯하여 미국, 일본, EU 등의 국가들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이하 KEDO)를 결성해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북한 신포 지구에 경수로(輕水爐, 보통의 물을 감속재-냉각재로 사용하는 원자로)를 활용한 발전소를 건설하는 합의를 맺었다. 그리고 2000년 3월부터 2001년 9월까지 오영진은 KEDO의 경수로 건설 현장에 파견되어 공사 관리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한국전력공사나 KEDO 입장에서는 오영진을 북한에 보낸 것이 단순히 자신들이 보유한 인력을 활용하는 것 이상을 넘지 못했겠지만, 오영진의 입장에서는 달랐다. 그 누구도 쉽게 가보기 어려운 북한에 무려 548일이나 체류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얻게 된 소중한 기회였다.

오영진은 북한에 머무르고 6개월이 지난 무렵부터 자신의 북한 체류기를 만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 후로 작가는 낮에는 공사 현장을 감독하고, 밤에는 만화 스토리를 열심히 구상했다. 게다가 서류 반출을 엄격히 통제하는 북한 세관의 눈을 속이기 위해 스토리를 적은 메모지를 발바닥에 붙인 채 통과하는 것은 물론, 한국에 다시 돌아오고 나서도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만화를 그리는 인고의 세월을 거쳐야만 했다. 이렇게 여러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발표된 작품은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분단 이후 최초로 북한에 직접 다녀와 그린 만화라는 점에서 의의도 컸지만, 북한을 이분법으로 재단하지 않는 동시에 만화 본연의 연출에 있어서도 고민과 노력이 가득 담긴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남쪽손님>과 <빗장열기>는 ‘르포만화’와 ‘일상만화’(일상툰)의 초기적인 형태를 모두 지녔다. 작가 본인이 직접 보고 들으며 겪었던 일들을 만화로 생생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르포만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작가 자신을 그대로 만화의 표면에 등장시키는 대신 ‘오공식’이라는 작가의 분신을 전면에 내세우고 하나의 에피소드 단위로 서사를 나누는 점에서 2004년 당시 형태가 조금씩 형성되던 ‘일상만화’의 성격 역시 함께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남쪽손님>과 <빗장열기>는 직접적으로 통일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북한 사람들과 자연스레 부대끼는 과정들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독자들에게 북한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조금씩 낮출 수 있었다. 동시에 오랜 분단을 거치며 남북한 사이에 생긴 차이점과 함께 ‘사람’으로써 지니는 공통점을 모두 조망하였다. 북한에 오랜 기간 머물며 얻은 풍부한 경험과 생생한 기록을 통해 한국 만화가 사상 처음으로 북한을 적대하지 않으면서도, 허공에 그치는 이상적인 주장의 일색에서도 벗어나는 소중한 계기를 준 것이다. 남북 간의 교류는 2000년에 본격적으로 이뤄졌지만, 한국 만화가 비로소 북한을 정면으로 응시한 시점은 2004년이라 봐도 과언이 아닌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후로도 오영진은 한동안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을 멈추지 않았다. 2005년 7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를 통해 북한의 당대 모습을 작가 본인의 경험에 픽션을 합쳐 그려낸 <新북한기행>을 연재했고, 연재가 종료된 이후에도 35면의 분량을 더 추가하여 <평양프로젝트>(2006)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을 발간했다. <남쪽손님> - <빗장열기>가 상대적으로 르포에 가까운 작업이었다면, <평양프로젝트>는 추가적인 자료조사와 새터민 청소년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전보다 더 두터운 토대를 기반으로 그려낸 픽션이었다. 동시에 정보 전달적인 성격을 좀 더 강화한 측면이 큰 작업이기도 했다.

 

[사진 4] 오영진의 <평양프로젝트>(2006) 표지.

이 작품을 끝으로 오영진은 북한에 대한 만화를 더 이상 작업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오영진은 <평양프로젝트>를 끝으로 북한에 대한 작업을 더 이상 발표하지 않았다. 작가 자신이 북한을 직접 몸소 체험한 경험은 2001년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은 물론, 한동안 남북 관계는 경색되어 있어 다시 북한을 방문하는 것도, 북한에 대한 화합과 이해를 말하는 작업을 발표하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허나 해외에서는 이후로도 오영진이 북한을 말해온 작업에 관심을 표했다. 2008-2009년에는 프랑스 출판사 FLBLB를 통해 <남쪽손님>과 <빗장열기>를 (남쪽손님)으로, 2011년에는 <평양프로젝트>를 같은 출판사를 통해 (미션 평양)이란 제목으로 발간하게 된 것이다.

그 덕분이었을까. FLBLB는 세 권의 단행본을 프랑스에 소개한 뒤에도 지속적으로 오영진의 작업을 출간하고 있다. 2013년에는 <수상한 연립주택>(2008)을, 2014년에는 <어덜트 파크>(2013)를 출간했으며, 2011년과 2017년에는 <남쪽손님>과 <빗장열기>의 합본판을 펴내기도 했다. 심지어 2017년에는 한국 작업을 라이선스로 펴내는 것을 넘어 직접적으로 오영진 작가와 계약해 한국에도 잘 알려진 동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Qui m’a fait caca sur la tete?)의 만화 각색판을 내기도 했다. 한국 만화가로써는 처음으로 북한을 경험하며 그린 작업이 정작 본국에서는 남북 관계 경색과 함께 빛을 바래던 사이, 프랑스에서는 그의 가치에 주목하고 신간을 기획할 정도의 큰 관심을 낳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탄생한 셈이다.

 

북한, 만화 장르의 한 요소가 되다

 

오영진의 시선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북한에서 벗어난 이후, 2008년 출범한 한국의 이명박 정권은 온갖 사건 사고를 거치며 북한과 깊은 대립각을 세우게 되었다. 다시 한 순간에 얼어붙은 남북 관계는 금강산이나 개성 관광 프로그램을 비롯한 북한 방문 기회를 무기한으로 중단하게 만들었다. 이 와중에 터진 2010년의 천안함 침몰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은 냉각된 남북 관계를 더욱 경직되게 만들었다. 같은 시기 통일 잡지 『민족21』에 연재된 조총련 계열의 재일교포 리정애 글, 만화가 임소희 그림의 작품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2010)가 단행본으로 발매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독자들에게 별다른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앞서 언급한 <연평해전>이나 <인천상륙작전> 등의 남북 갈등을 부각하는 영화가 기획되어 제작된 시기도 2010년대 초반이었다. 한국 영화가 남북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차 굳어가는 가운데, 한국 만화는 영화와 조금 다른 결을 걷기 시작했다. 물론 오영진처럼 북한을 서로 함께할 수 있는 파트너로 그리지는 못 했다. 그러나 북한을 단순히 맞서 싸워야 할 적으로 그리는 대신, 장르를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서사적 장치나 설정으로써 애용하기 시작했다.

 

[사진 5] Hun의 <은밀하게 위대하게>(2010>은 한국 만화는 물론

대중 문화 전반에 북한인에 대한 클리셰를 심은 효시와도 같은 작품이다.

 

2010년 다음 만화속세상에 연재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Hun의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북한’을 장르의 요소로 당당하게 활용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증명한 선언적인 작품이었다. 작품 자체는 연재가 시작하고 끝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현실성이 부족하고 작위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동네 바보로 취급당하던 청년이 알고 보니 철저히 스파이 교육을 받은 북한의 비밀 요원이었고, 그 밖에도 그저 주변에서 흔하게 볼 법한 우체부 아저씨, 가수 지망생 등등의 동네 사람들이 모두 ‘북한 간첩’으로 암약하고 있다는 설정을 지닌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분명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본격적인 스파이물이라 칭하기엔 논리가 결여된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았고, 인물 사이에 펼쳐지는 드라마의 비중이 상당히 강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북한 스파이’가 막연히 부정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엄연히 하나의 매력적인 캐릭터로써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였다. 어느덧 구식이 된 남북 간의 대립 구도에서 한 발짝 떨어져, 북한인을 주인공으로 인간적인 감정을 표현하거나 심지어는 그들 사이의 묘한 ‘브로맨스’ 구도도 성립할 수 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내고 호응을 얻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작품의 폭발적인 흥행은 배우 김수현, 박기웅, 이현우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를 만들어 냈고, 원작의 인기를 이어받은 영화의 흥행은 다시 연재가 종료된 이후 한동안 수면 아래 머물러 있던 원작을 다시 불러내어 등장인물들의 과거를 그린 스핀오프 <은밀하게 위대하게 : 슬럼버>(2013)와 또 다른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속편 <은밀하게 위대하게 2>(2013)을 발표하게 만드는 기염을 표출했다. 비록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이후 개봉한 영화 <용의자>, <공조> 등과 얽히며 대중 매체 속 북한인의 이미지를 ‘잘생기고 능력 있는 스파이’에 고정시켰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이러한 비판을 받아들이더라도 하나의 장르 클리셰를 처음으로 제시했다는 시발점이라는 의의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구현한 ‘북한인 = 첩보원’ 이미지는 이후 북한을 소재로 삼은 다른 만화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양우석 글, 제피가루 그림으로 2011년 다음 웹툰에서 연재된 <스틸 레인>은 본격적으로 만화의 차원에서 국제 관계 위에 놓인 남북 관계를 소재로 삼은 작품이었다. ‘북한 강경파의 쿠데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설정을 전면에 내세운 <스틸 레인>은 작품이 연재될 당시 여러 차례 충돌해 달아오른 남북 관계에 흥미로운 가설과 국제 정치의 역학을 가미하며 한국 만화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스릴러의 감각을 담아냈다. 또한 밀리터리 소설 <데프콘> 시리즈 정도가 겨우 구현하던 가상의 남북미 전쟁 구도를 이미지로 생생하게 구현하는 한편, 북한 측 캐릭터에 적당한 카리스마와 액션을 담아내며 어느 한 국가 캐릭터로 축이 급격하게 쏠리지 않는 균형 감각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이후 <스틸 레인>은 이후 <변호인>을 통해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며 영화계에서 주목을 받은 스토리 작가 양우석의 연출을 통해 2017년 영화 <강철비>로 다시 탄생했고, 영화 제작은 다시 원작에도 영향을 미쳐 <스틸 레인>이 셀프 리메이크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사진 6] 강태진의 <조국과 민족>(2015)은 블랙 코미디의 틀로

북한에 대한 대중 문화의 클리셰를 뒤트는 동시에 한국의 독재 정권 시기를 풍자한다.

 

한편 강태진이 2015-2016년 레진코믹스에 연재한 만화 <조국과 민족>은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스틸 레인>에서 선보인 북한의 이미지를 다시 한 번 뒤집어 꼬며 블랙 코미디의 요소로 북한을 활용한다. 작품에는 분명 ‘북한 스파이’도 등장하고, 이들을 체포하기 위한 ‘남한 요원’도 함께 등장한다. 허나 작품의 배경은 1987년이고, 남한의 안기부 요원들은 북한 스파이를 체포하기는커녕 정권 유지를 위하여 스파이를 만들어내기에 여념이 없다. 그 사이에 북한 스파이는 남한 요원들을 유유히 조롱하며 사라지기에 바쁘고, 안기부와 북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주인공들의 느와르는 결국 기묘한 늪 속으로 깊게 빠지고 만다. 그렇게 <조국과 민족>은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기점으로 한국 만화에 깊게 새겨진 북한인의 ‘엘리트 스파이’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비틀고, 그러한 비트는 과정을 통해 강태진은 반공에 입각하여 국가를 통제하고 폭력을 행사했던 1980년대 한국의 모습을 풍자한다. 이렇게 2010년대 이후의 한국 만화는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북한을 그려내며 때로는 흥미진진한 장르적 설정으로, 때로는 서사를 뒷받침하기 위한 하나의 요소로써 북한을 바라다보고 있다.

 

2010년대 이후, 한국 만화는 어떤 모습으로 북한과 마주할까

 

어느덧 2018년 하반기에 접어드는 지금, 10년 동안 냉랭했던 남북 관계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풀리고 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 신포 경수로 건설이 오영진의 <남쪽손님>과 <빗장열기>를 만들었던 것처럼, 분명 지금의 유화적인 관계는 한국 만화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허나 차이가 있다면, 한동안 한국 만화에서 북한이 유의미한 소재로 쓰이지 못했던 1990년대 중후반 - 2000년대 초반과 달리 2010년대 후반의 한국 만화는 이미 장르적인 소재로써 북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또한 같은 유화적인 분위기라도 2000년의 시선과 2018년 현재의 시선이 다르듯, 한국 만화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 역시 결코 이전과는 같을 수 없다.

게다가 절대적인 인원수는 많지 않지만, 북한을 이탈해 한국에 정착한 새터민들이 점차 다양한 대중 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2010년대 중반 이전까지 새터민들은 기껏해야 KBS <남북의 창>이나 MBC <통일전망대>와 같은 지상파 북한 프로그램, 또는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TV조선 <모란봉 클럽>과 같은 종편 채널의 새터민 토크쇼 프로그램에서야 자신의 존재를 매체에 드러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전자의 프로그램은 직간접적으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상을 넘지 못했고, 후자의 프로그램들은 여전히 냉전 시절의 반공 정서에 머물러 있는 한국 보수 세력의 인식을 강화하는 도구로써 새터민을 활용할 따름이었다. 주류적인 매체가 타성에 젖어있는 사이, 새터민들은 아프리카TV나 유튜브 등을 비롯한 ‘1인 미디어’를 통하여 직접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사진 7] 새터민 만화가 최성국이 한국에 최초로 연재한 장편 웹툰 <로동심문>(2016)의 단행본 표지.

 

특히 2010년 북한을 이탈해 2016년부터 네이버 도전 만화에 웹툰 <로동신문>, 국제앰네스티한국지부 홈페이지에 웹툰 <한국 청년 류시진의 북한 표류기> 등의 작품을 연재한 최성국 만화가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다수의 새터민들이 그렇듯 최성국 역시 북한을 강하게 경멸하는 반공적인 입장이 강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조선-중앙-동아일보를 비롯한 보수 신문들이나, TV조선-채널A 등의 종편 채널이 북한에 대한 가십적인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과 달리 최성국은 철저하게 자신이 직접 체험했던 상황들에 근거해 작품을 전개한다는 차이를 보인다. 비록 자신이 북한에서 정치적-경제적 압박을 받은 경험이 있기에 반공주의적 입장을 내비추지만, 경험에 기반을 두어 스토리를 풀어낸다는 점에서는 옛날 오영진의 작업들과 맥락을 같이하는 측면이 존재하는 셈이다. 아직까지 만화를 본격적으로 그리는 새터민은 최성국 혼자 밖에 없지만, 최성국이 그려낸 작품들의 모습은 앞으로 더 많은 새터민들이 ‘당사자’의 입장에 서며 만화로써 자신들의 경험을 드러낼 작품들의 상을 미리 고민토록 하는 하나의 창구가 된다.

 

아무도 남북 관계의 앞날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던 시기 이상으로 평화와 화합을 향해 한 걸음 진전할 수도 있지만,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일순간 ‘무기한 회담 연기’ 선언이 잠시나마 있었던 것처럼 좋아만 보였던 관계가 한 순간에 얼어붙을 수도 있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는 남북 관계의 경직이 지난 10년처럼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도 상존한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건 한국 만화는 장르의 구도 안에서, 또는 화합을 고민하는 성찰 안에서 북한을 계속 그려낼 것이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많은 새터민들이 한국 만화의 영역에 ‘피사체’가 아닌 ‘창작자’로써 등장할 가능성이 무척이나 크다. 오랫동안 수동적이거나 일방적인 묘사로 그려지던 북한의 이미지에도 변화가 필요하며, 설사 북한과의 이해나 소통을 말하더라도 과거와 동일한 모습 그대로 접근하기엔 어렵다. 한국 사회가 변화하는 만큼, 한국 만화 역시 어떤 식으로든 변할 수밖엔 없는 셈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변화하던, 그 변화의 양상은 일방적인 고정관념이나 적대를 넘어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써 평화를 모색하는 자세가 뒷받침해야 하지 않을까. 마치 한국 만화가 북한을 바라보던 시선이 적대에서 공존으로 서서히 전환했던 것처럼, 앞으로의 한국 만화가 지닌 시선 역시 그러해야 할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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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김낙호, <한국현대만화사 1945 ~ 2010>, 두보북스, 2012.

반쪽이(최정현), <반쪽이만화 : 그날을 이루리라 1958 ~ 1988>, 1988.

최정현, <민주주의를 위해 포기하세요>, 한길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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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진, <남쪽손님 ; 보통시민 오씨의 548일 북한체류기 상>, 길찾기,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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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진, <평양프로젝트>, 창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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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중요한 것은 지원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는 것>, 자유아시아방송, 2004년 6월 9일.

전유하, <리옹 만화 축제>, 한국외국어대학교 특성화 사업단, 2017년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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