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리뷰
작성일 2018.11.23 조회수 124

연대의 드라마

<송곳> (최규석 작)

 

박근형(만화평론가)

 

웹툰은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만큼 소재의 대중성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미디어다. 그러나 <100℃>, <대한민국 원주민>,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와 같은 작품들로 이미 저력을 보인 최규석 작가는 <송곳>으로 ‘노동권’과 같은 시사성 짙은 소재의 웹툰도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송곳>은 프랑스의 유통 기업인 까르푸가 이랜드 홈에버에 매각되면서 발생했던, 2003년 까르푸 중동점의 노조 투쟁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홈에버의 현재 이름은 홈플러스다. <송곳>은 2014년 오늘의 우리 만화에 선정되었고, 2015년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연재가 종료된 후인 2018년에도 부천만화대상 대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노동이라는 기호로 학습된 사회적 프레임을 떠올려본다. 자본주의, 기득권층, 기업과 같은 악한 강자들과 민중, 노동자와 같은 선한 약자의 구도를 연상케한다. <송곳>은 이러한 클리셰를 답습하지 않는다. <송곳>에서 그리는 것은 원론적인 계급투쟁이 아닌, 노동권을 지키려는 인간 드라마다. 최규석 작가가 오랜 취재로 공들여 표현한 현실성이 드라마에 힘을 더한다. 그들이 사수하고자 하는 것은 노사 갈등이라는 관념적인 언어 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받는 평범한 삶이다.

 

 


 

이 주제 의식은 부진노동상담소 소장인 구고신의 대사를 통해 명백히 드러난다. “패배는 죄가 아니오! 우리는 달리기를 하는 게 아니라 삶을 사는 거요. 우리는 패배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거요. 우리의 국가는 평범함을 벌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오! 우리는 벌 받기 위해 사는 게 아니란 말이오!”

 

주인공 이수인은 외국계 대형마트 푸르미의 청과 과장이다. 그는 그의 가치관에 반하는, 정의롭지 못한 일을 묵인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 일들이란 대부분 당시 한국 사회의 통념상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출세와 꼰대’가 대변하는, 사회의 기준에 걸맞은 어른이 되기 위해 수인은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한다. 그러나 군대에도 블랙홀은 산재했다. 그는 원했던 꼰대가 되지 못한 채 제대하고 프랑스계 유통기업에 취업한다. 수인은 그곳에서는 가만히 세상에 물들고자 하나, 또다시 그는 ‘송곳’처럼 튀어나오고 만다. 부당해고 지시를 거부하고 노조에 가입한 것이 원인이었다.

‘모든 곳에서 누군가의 걸림돌’로 자신을 규정했던 그는 일동점 노조를 조직하기 위해 부진노동상담소를 찾는다. 수인은 그곳에서 노무사 구고신을 통해 존재의 전회를 맞는다. “그런 시절부터 피 흘려가며 만든 법이야, 노동법이. 누가? 당신 같은 사람들. (...) 세상의 걸림돌 같은 인간들.”

 

부진노동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구고신은 작품 내 가상의 지역인 부진시 전역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운동을 돕는다. 고신은 푸르미 노조 일동지부를 결성하는 것부터, 수많은 고락을 수인과 함께한다. 고신은 더 큰 목표를 위해 작은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여 올곧은 성격의 수인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푸르미 일동점 노조 간부도 참가한 부진일반노조 환경지부 야유회에서, 어리숙해 보이는 젊은 경찰에게 고신은 고압적으로 행동한다. 항의하는 수인에게, 고신은 모인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상기시킨다. “저 사람들 환경과 9급 공무원이 하느님 같은 사람들이오. 오늘 여기 모인 것만으로도 인생을 건 도박을 하는 거라고. (...) 폭력을 쓰느냐 마느냐는 나에게 힘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지, 그것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오. 해야 하고, 해도 되면, 하는 거요.”

 

 


 

‘해야 하는가? 해도 되는가?’ 목적과 수단, 행하는 주체와 그 대상에 대한 윤리를 고려하였는지,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은 후에 수인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힘겹게 시작한 파업은 곧바로 송 부장에 의해 난관을 맞는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수인은 젠더 권력의 약자인, 유일한 여자 부장인 송 부장에게 욕설을 한다. 그렇게 그녀를 매장에서 쫓아냄으로써 사측과 노조의 물리적 충돌은 피할 수 있었다. 수인 개인의 신념으로 비추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알면서도 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로 수인은 파업이 끝나고 복귀하는 날, 동료들에게 인사도 남기지 못하고 일동점을 떠나고,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이수인 본인도 20년은 후회할 일’로 남는다. 수인이 줄곧 바라왔던 대로 규칙과 규율이 비인간성에 기대지 않고 합리적으로 작동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매사 능청맞지만 강인해 보였던 고신은 과거 노동운동 시절의 고문 후유증으로 만성 신부전을 앓고 있다. 어느 날 그를 고문했던 경찰 연상길이 그의 사무소가 있는 건물의 경비원으로 우연히 취직한다. 게다가 그가 복직을 도왔던 부진교통의 성학이 분신자살하자 고신은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빠르게 쇠약해져 간다. 다른 사람의 삶을 망칠까 두렵다는 수인에게 그건 지병 같은 것이라고 담담하게 표현했던 고신은, 성학의 장례식에서 ‘내가 죽인 것’이라는 회한을 뱉는다.

푸르미 일동지부 노조가 사측에서 건 압류의 압박으로 전원 파업에서 간부파업으로 전환하고 맞이한 설. 고신은 마지막 인사를 하듯 그가 참여했던 현장들과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찾는다. 그리고 과거 고신이 고문을 못 이겨 이름을 적은 바람에, 마찬가지로 고문을 당해 다리가 망가진 후배 정환을 마주친다. 정환은 사측 노무사로 활동하며 이른바 노조깨기로 활약 중이었다. 그가 변절한 계기는 노동운동의 성과로 강성해진 노조가 또 다른 약자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정환은 고신에게 묻는다. “선배는 어떻게 버텨? 아니... 왜 버텨? (...) 나도 좀 압시다. 어떻게 그렇게 위대할 수 있는지. 예?”

 

 


 

정환의 질문을 듣는 고신은 시선은 다음 컷의 정환의 목발로 이어진다. 그리고 고신은 다리를 다친 젊은 정환과의 기억을 떠올린다. 젊은 고신의 시선도 목발과 다리로 향한다. 젊은 정환의 다리에서 멈춘 회상은 현재의 정환의 다리를 그린 컷으로 이어진다. 정환이 첫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고신의 시선은 정환의 다리를 먼저 바라본 후 얼굴로 향한다. 이러한 연출은 고신이 정환에 대한 죄책감을 줄곧 가져왔음을 드러낸다. 고신의 친구들이 고신이 성치 않은 몸으로 아직도 노동 현장에 남아있는 것을 “세상에 대한 복수이자 지가 망친 인생들에 대한 부채”라고 지적했던 것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푸르미 일동지부 노조 결성 초기, 조합원이 쉬이 모이지 않자 울분을 토로하는 노조원들에게 고신은 일갈한다. “한심하고 갑갑해 보여도 그 사람들이 당신 싸움의 수단이고 목적이오. 그 사람들 없으면 당신들도 없다고.”

 

 


 

아마 그것은 고신 자신의 수단이고 목적이기도 할 것이다. ‘선한 약자’가 아닌 시시하고 구질구질한 그냥 인간. 그런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 약자에게 가장 필요한 사회적 연대는 그것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출발한다. 수인이 노조활동으로 급여가 삭감되어 갈등을 겪는 조합원들에게, 그리고 노조 간부들과 노동운동가들에게 한 발언 역시 그 맥락을 따른다. “탈퇴한 분들은 배신자가 아닙니다. 모두가 같은 무게를 견딜 수는 없습니다.(...) 더 절실한 사람들에게 열려있지 않은 노조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조합원들과의 관계가 다 깨져버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틀어지면 회사보다 서로를 더 미워하게 돼요! 싸움 끝나면 같이 한 공간에서 일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정체된 도로 위로 폭설이 내린다. 고신이 차에서 내려 쌓인 눈사람을 만들자,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즐겁게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한다. 고신이 걸어온 길을, 그리고 그가 바란 희망적인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 풍경을 바라보던 고신은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데 연이어 고가 다리를 아래서 위로 바라보는 컷이 등장한다. 그가 쓰러진 장소를 시각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그의 인생이 “고도성장의 뒷면, 아랫부분,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수많은 콘크리트, 철근, 전선들이 얽히고 섞여서, 누군가에게는 씽씽 달릴 수 있는 이 다리를 지탱하던 노동의 공간을 버티는 것”(<정제된 언어, 화려한 연출의 냉정한 무채색의 세계>, 한상정, 황해문화 통권 98호)이었음을 대변한다. 고신이 입원한 병원의 로비에는 그를 염려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그가 잇고, 만들어내어 살린 연대의 풍경이다.

 

일동지부의 총파업은 간부 파업으로 전환되고, 내부 분열을 겪으며 마침내 수인의 1인 농성으로 이어진다. 조합원 간의 갈등으로 배척받기도 하고, 기존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끌어내리면서까지 수인은 자리를 지켜, 극적으로 회사와 교섭할 기회를 잡는다.

그러나 교섭 조건에는 수인의 전출이 있었다. 홀로 연수원으로 옮겨온 수인의 자리에는 컴퓨터는커녕 종이 한 장도 없다. 결국 그는 컴퓨터를 쓰기 위해 PC방을 찾았다가, 일동점 조합원들이 보낸 메일을 발견한다.

 

 


 

일동지부는 조합원들의 의식수준이 낮고 이수인, 주강민 둘의 신망으로 유지된다고 평가받았던 조직이었다. 처음에는 과장으로써의 수인을 불편해하며 거리감을 느끼고, 후에는 노조 간부로서의 수인에게 의지했던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 선거를 통해 다음 지부장과 사무장을 선출하고, 사측에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하고, 조합원들을 늘려간다. 과격하고 피상적인 계급투쟁 논리를 내세운 직업 운동가들과 연대했던 본조가, 단협을 체결하고 사무실을 얻는 성과는 남겼지만 조합원은 거의 잃어버렸던 것과 대비되는 결과다.

 

일동지부는 자생하고, 고신도 회복하며, 수인도 노조활동을 이어간다. <송곳>의 결말은 희망적이다. 그러나 <송곳>과 영화<카트>라는 두 작품이 탄생할 정도로 길고 치열한 노사 갈등을 겪어온 홈플러스(전 까르푸, 홈에버)는 최근 다시 비정규직 계약 종료 문제로 비판을 받고 있다.

4권 마지막, 이수인은 부조리가 만연한 현장을 둘러보며 독백한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가끔 고장 난 신호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의 신호등은 모두 꺼져 있다. 대체 이 신호등들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 푸르미 일동점 의 싸움은 그들의 신호등을 다시 켜기 위함이었다. 2018년, 아직도 도처에 등이 꺼져있다. 그 어둠을 밝힐 불씨가 하루빨리 밝혀지기를, 그리하여 전복된 일상이 더 나은 내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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