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리뷰
작성일 2018.10.24 조회수 242

흰띠들에게 보내는 편지

<샌프란시스코 화랑관> (돌배 작)

 

박근형(만화평론가)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 다양한 문화, 인종의 사람들이 녹아드는 미국 사회를 일컫는 개념입니다. 학창시절 사회 교과서에 종종 등장했던 이 단어는, 다원화된 다문화 사회보다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미국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을 뜻했습니다. 현재는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사는 미국 사회를 표현하기 위해서, 문화적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는 샐러드 그릇(Salad Bowl) 혹은 모자이크 사회(Mosaic Society)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샌프란시스코 화랑관. 듣기에 참 이질적인 단어들의 연결입니다. 도장 이름처럼 구성원도 이질적입니다. 게임회사 엔지니어로 일하는 한국인 가야. 폴리네시안 혼혈이자 전직 경찰관인 관장 데일 보이어. 스페인에서 온 지오. 동성애자라는 것을 이유로 가족과 절연한 클라우디오. 자기 자신에 대해 콤플렉스가 심한 앤. 재혼 가정의 에밀리오, 도장에 다니지는 않지만 도장 사람들이 자주 가는 펍의 주인인 크로스 드레서 록샌느 등. 물론 미국 사회의 주류 구성원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주요 등장인물들은 대개 이방인입니다.

 

 


 

그들은 각자의 이유로 이방인이고, 그 다름 때문에 그들은 갈등하고, 이해하며, 공존합니다. 함께 존중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수용을 전제합니다.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에서 이 과정을 돕는 소재로 태권도를 차용했습니다. 이처럼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은 모자이크 사회를 압축해놓은 듯 한 곳입니다. 웹툰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은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되, 주된 흐름은 주인공 가야의 변화와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많은 독자들은 이 웹툰을 ‘힐링 웹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랑스러운 캐릭터 조형과 아기자기한 컷 구성, 따듯한 색감, 아날로그 느낌이 나는 텍스처, 그리고 달달한 로맨스까지, 이 점 만으로도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은 힐링 웹툰이 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더하여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을 특별한 점 중 하나는, 어딘가에 있을 법한 현실적인 인물들입니다. 돌배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이 만화를 시작할 때 무조건 현실적으로 진행하겠다.’라고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각 에피소드의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과 인간관계 역시 현실적인 수준이기에 보다 공감하고 이입하기도 쉽습니다.

 

현실에 뚜렷한 선역도 악역도 없는 것을 반영하듯,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의 인물들은 입체적입니다. 가야에게 영문을 모르게 쌀쌀맞던 페니는 가야에게 무시당했다고 여긴 적이 있었고, 앤은 남몰래 게이인 클라우디오를 좋아하지만, 자신의 콤플렉스에 갇혀 그의 정체성을 비난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주인공 가야도 모든 사람이 그렇듯 완벽하진 못해서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행동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인간적인 결함을 수용하고 극복하려 합니다. 페니는 가야와 소통을 통해 친구가 되고, 앤은 클라우디오에게 진솔하게 사과합니다. 가야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돌아보는 법을 배웁니다. 돌배 작가의 인간에 대한 낙관주의와 애정이 엿보이는 지점입니다.

 

이 웹툰의 댓글란에서는 ‘등장인물이 모두 착해서 좋다’는 댓글이 드물지 않게 보입니다. ‘착하다’라는 표현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여러 뜻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태권도라는 수련을 거쳐 정신적, 신체적 성장을 이루는 과정, 그리고 나 자신과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마음, 그것이 가능해진 공동체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의 주제 의식은 데일 보이어 관장의 소꿉친구인 루이스를 통해 확연히 드러납니다. 과거의 상처가 많은 루이스는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데일을 찾아오지만,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인 나머지 데일마저 다시 고통 속으로 끌어들이려 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일갈하는 것은 가야입니다. 죄책감 때문에 루이스에게 냉정하게 굴지 못했던 데일도 가야 덕분에 루이스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그녀가 앞으로 나아가길 종용합니다.

 

삶은 순간이 아니라 누적이라 했습니다. 어제의 슬픔은 오늘 극복할 수 있고, 오늘 미웠던 이에게서 내일 의외의 일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지금 이 순간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보다 건강하고 성숙한 내일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에서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면모와 그들의 과거를 조명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묘사하는데 공을 들이는 것은 그러한 의지의 표명일지도 모릅니다.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에 이어 다음 작품들인 <계룡선녀전>과 <헤어진 다음날, 달리기>까지 읽고 나면 돌배 작가의 작품관은 더욱 뚜렷이 다가옵니다. 그 기저에는 건강하게 나아가는 삶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자리합니다. 이러한 삶을 구축하는 데에는 각각의 방법과 속도가 있을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에서는 태권도를, <헤어진 다음날, 달리기>에서는 달리기가 그 방법으로 제안합니다. 미국 사회에서도 회사에서도 적응을 힘들어하며 위축되어 있던 가야는, 태권도와 화랑관의 사람들과 함께 건강한 자아를 만들어 가는데 성공합니다.

 

 


 

이처럼 행복과 공존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방법이 있고 그전에 각자의 시행착오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지점에서는 흰 띠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검은 띠 일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은 어제에 대한 위로를 건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일을 향한 격려를 보냅니다. 이것이 이 작품이 본질적으로 ‘힐링 웹툰’이라고 불리는 이유일 것입니다. 고달픈 현실에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잃은 이들에게, 화랑관 관장 데일이 가야에게 했던 말을 전합니다.

 

“(…) 차차 많은 실수와 경험을 거듭하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거죠. 초보자였을 때 겪었던 체념과 당혹스러움이 나중에는 아무것도 아닐 때가 분명히 와요. 그때는 아마 이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뿌듯해할 때가 올 거예요. 조급해 할 필요 없어요. 흰 띠는 흰 띠답게, 자연스럽게, 천천히 해나가면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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