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리뷰
작성일 2018.10.25 조회수 178

유미 씨,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유미의 세포들> (이동건 작)

 

지덕재(만화평론가)

 

네이버 웹툰에서 2015년 4월 1일부터 연재 중인 <유미의 세포들>은 네이버가 자랑하는 인기 작품이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주 2회 연재되는 <유미의 세포들>은 해당 요일 인기 순위 1, 2위를 다툴 뿐만 아니라 게임, 인형, 각종 생활용품 등으로도 활용되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다양한 굿즈로 활용되는 이 작품을 드라마나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아 흥미롭다. 이 정도로 인기를 모으는 작품이라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었을 때 화제성은 보장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동명의 네이버 웹툰 <치즈인더트랩(순끼 작)>이나 <한번 더 해요(글 미티, 그림 구구 작)>를 각색한 <고백부부>가 드라마로 만들어지며 큰 성공을 거둔 모습도 보지 않았나? 사실 이보다 더 낮은 인기를 지닌 작품도 심심찮게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으로 각색되고 있는 현실에서 <유미의 세포들>처럼 높은 인기를 누리며 오랜 시간 연재되고 있는 작품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아하다.

 

이 궁금증은 <유미의 세포들>이 지닌 특성을 살펴보면 풀 수 있다. 사실 <유미의 세포들>의 줄거리는 매우 무난해 보인다. 30대 초반(유미는 03학번이다)의 여성 김유미가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며 연애도 하다가 자발적으로 퇴사한 후 자신의 꿈이었던 작가의 길에 접어서는 과정을 그린 것이 전부다. 이 과정 중에서 유미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 또한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흔하다. 회사 후배를 짝사랑했다가 고백하지 못한 채, 별 생각 없이 나간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와 진지한 연애를 하기도 하고 남자친구와 지나치게 친밀한 다른 여성 때문에 속을 앓기도 한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에는 회사 동료와 비밀 연애를 시작했다가 제일 친한 친구와 오해를 겪기도 하는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난한 줄거리를 특출하게 만드는 힘은 캐릭터에서 나온다. 유미가 회사 동료들 등 외부 인물과 갈등을 겪거나 다양한 결정을 내릴 때 겪는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유미의 머릿속 ‘세포마을’에 살고 있는 여러 세포들의 행동에 따른 것이다. 유미의 호기심을 담당한 ‘호기심 세포’, 이성적인 생각을 형상화한 ‘이성 세포’, 감정적인 모습을 주로 나타내는 ‘감성 세포’나 식욕을 담당하는 ‘출출 세포’ 등 다양한 세포들이 힘겨루기를 벌이고, 이 결과는 고스란히 유미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사실상 <유미의 세포들>이 지닌 서사의 힘은 이러한 캐릭터들의 특성에서 기인하며, 세포들의 갈등이 곧 평범하고 무난한 유미의 이야기에 특별한 서스펜스를 부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미의 세포들>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기 어렵다. 또한 종래의 스크롤 방식 웹툰에도 썩 어울리지 않는다. <유미의 세포들>은 ‘컷툰’이라는 형식으로 연재되고 있는데, 이 형식은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의 읽기 방법을 차용했다.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컷툰은 컷 하나하나를 손으로 넘기면서 보도록 만들어졌으며, 각 컷별로 독자들이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무협물이나 역사물처럼 거대한 서사의 힘이 주를 이루는 다른 작품과 다르게, <유미의 세포들>은 과장된 특성을 지닌 각 세포들이 토의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컷을 구성해 읽는 이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한다. 독자들은 컷툰으로 구성된 <유미의 세포들>을 보면서 느낀 점을 고스란히 컷의 댓글로 표현하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갈등 구조가 컷툰이라는 형식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유미의 세포들>은 작가 이동건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그는 전작 <달콤한 인생>을 통해서 20~30대 인물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연애와 생활 속 소소한 사건들을 유머러스한 시각으로 다룬 바 있다. 일상 속에서 가볍게 지나치기 쉬운 상황과 미묘한 감정을 포착, 섬세한 솜씨로 독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던 이동건은 <유미의 세포들>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경기도 고양시와 흡사한 공간적 배경과, 실제 독자들의 계절 감각에 맞춘 시간적 배경을 토대로 평범한 30대 여성 김유미의 사고 흐름을 예리하게 그려내는 동시에 인스타그램 유미 계정(@yumiiii_0109)에 작품과 어울리는 이미지를 틈틈이 업로드하며 작품에 현실성을 더한 것이다.

 

 


 

<유미의 세포들>에서 독자들에게 가장 큰 지지를 얻었던 말이 있다. 동거하던 남자친구 ‘구웅’이 집을 떠나고 나서, 외로움을 느끼다 잠든 유미는 꿈속에서 자신의 머릿속 세포마을에 방문하게 된다(194화). 꿈속의 유미는 “웅이야말로 내 인생의 남자 주인공”이라고 말하지만, 세포마을에서 만난 게시판 관리자 세포는 “남자 주인공은 없으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유미 너) 한 명이거든”이라는 말을 유미에게 던진다. 홀로 잠든 유미의 모습 위로 게시판 관리자가 던진 이 한 마디는 해당 컷 댓글 수 2,000개 이상을 모으며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공감과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유미의 세포들> 속 주인공 유미는 결코 눈에 띄게 개성적인 인물도 아니며, 특별한 사연이나 기이한 재능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유미의 세포들도, 유미의 남자친구와 친구들도 가족도 모두 우리가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유미의 세포들>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캐릭터와 컷툰이라는 형식, SNS의 활용 등을 통해 이런 평범한 이들의 감정과 사고를 주인공으로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는 마치 TV나 스크린 속 연예인들이 스타가 되던 과거와 달리, 카메라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BJ가 되어 유명인이 될 수 있고 일상적이지만 재미있는 콘텐츠로 수십만의 마음을 사로잡는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는 듯하다. 이 때문일까? <유미의 세포들>은 2016년 ‘오늘의 우리만화’에 선정됐다. 다른 언제도 아닌 바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호흡하면서 앞으로 웹툰이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엿보게 해 준 <유미의 세포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흥미롭다.

댓글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