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리뷰
작성일 2018.09.21 조회수 315

‘다시쓰기’를 통해 성장한 모두에게 바치는 찬가

<여중생A> (허5파6 작)

 

지덕재(만화평론가)

 

들어가며 : ‘읽기 전용’ 삶 - 현실과의 거리두기

 

<여중생A>를 이루는 주요 재료는 바로 ‘2000년대 초반에 10대였던 사람이 실제로 겪었던 순간들’이다. 이 이야기에서 보이는 여러 소재는 명백히 2000년대 초반을 가리키고 있으며, 작품 속 에필로그를 통해 어른이 된 주인공 미래의 모습까지 보여 준다.

독자는 이 만화를 읽을 때 현재형으로 서사를 접하지만, 사실 <여중생A>의 이야기는 이미 과거로 흘러가버린 시간 속에 있다. 달리 말하면, 이 이야기는 성인이 된 미래가 미성년자였던 시기를 돌아보면서 거리를 두고 자기 자신을 관찰해 나간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우리는 어려운 고비에 맞닥뜨린 사람에게 ‘도망치지 말라’는 말로 어려움에 직면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사실 이런 말은 모든 상황에서 옳은 것은 아닌, 도식적인 말이다. <여중생A>는 적어도 그런 고정관념에서는 탈피한 작품이다. 좋지 않은 가정환경에 놓인 미래에게 현실에서 ‘도피하기’라는 선택지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게임 속 자아와 현실 속 자아를 다른 것으로 여기는 일은 미래가 현실에서 받은 상처로부터 ‘거리를 두는’ 방식이다.

 

 


 

미래의 현실 도피 수단은 게임플레이와 좋아하는 작품들을 보는 일이다. 미래가 ‘망겜’인 <원더링 월드>를 계속 하는 건 거기에 자신이 시간을 들여 이룩한 업적(레벨, 아이템)과 관계(길드)가 있기 때문이다. 또 좋아하는 책과 영화는 아무리 마니악한 것일지라도 든든한 성채처럼 미래를 지켜 준다. 도서부원인 미래는 학교 도서관을 자신의 은신처이자 고유한 영역으로 여긴다.

 

 


 

그런데, 거리를 두고 회피하는 식으로 살아온 미래의 방식은 어떤 현재를 만들어내는가? 미래는 계속해서 이 삶이 베타테스트라고 되뇐다. 게임이 정식으로 출시되기 전에 이루어지는 것이 베타테스트이듯, 자신의 ‘진짜 삶’도 이다음에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삶을 대하는 미래의 태도는 ‘읽기’에 가깝다. 자기의 일도 거리를 두고 남의 일처럼 대하는 것.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 불러일으킨 강렬한 감정에 빠져들었다가도 금방 벗어나는 것.

 

 


 

좋은 일에는 반드시 탈이 따른다는 뜻을 지닌 호사다마(好事多魔)란 사자성어는 미래의 좌우명인 동시에 ‘마음의 에어백’ 역할을 해 준다. 언제나 최악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에도 태연히 대응할 수 있다. 미래는 삶의 어떤 것들과 직접 맞닥뜨리는 순간마다, 또 그 순간에 어떤 감정이나 욕구를 느낄 때마다 “내 주제에”라고 말하면서 상황을 피해 간다. 그것에 반응하는 일이 스스로 주제넘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거리를 둔다.

 

 


 

환상을 깨고 ‘현재’와 조우하기

 

십대의 첫 학년 첫 학기 교실은 누구에게나 무섭고 위협적인 정글이다. 개인이 개인 모두에게 그렇다.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다들 선술집에서 고용되기를 기다리는 용병들처럼 자신의 취향과 능력과 인맥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있다. 각자가 상대의 ‘급’을 본능적으로 탐색하고, 무리를 짓고, 힘겨루기도 한다. 좋지 못한 조건에 처해 있는 미래는 아이들에게 뒷담화로 ‘음침하다, 답답하다’는 평가를 받고 교실 내에서도 ‘낮은 지위’에 위치하며, 무리에도 끼지 못한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타자를 쉽게 ‘대상화’한다. 대상화란 어떤 사람이 가진 여러 특징 중 한 가지로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하고 편견을 갖는 일이다. 또 대상화는 자기중심적인 시각에서 상대에게 환상을 덧씌우거나 상대를 도구처럼 다루는 일과도 같다. 백합과 미래와 태양의 삼각관계는 사실 서로를 향해 품은 환상 때문에 대상화가 이루어진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미래는 짝사랑하던 이태양과 이백합이 사귄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한 후, 몰래 삶을 그만두기로 결정한다. 이런 미래의 마음을 바꿔 준 것은 학교 바깥의 새로운 인연, 즉 현재희(희나)와 길마(유엘느안)와의 만남이다. 게임에서 캐릭터로만 알던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 현실에서도 지인이 되는 첫 순간이 찾아오고, 미래는 자기의 서로 다른 세계가 뒤섞이는 신선한 경험을 한다.

미래는 한 때 글을 쓴 적이 있으나, 자신의 글을 읽었던 백합의 권유와 관심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도망쳐 다녔다. 미래가 다시 글을 쓰게 되는 건 바로 길마의 블로그에 연재되는 인터넷 소설을 읽으면서부터다. 미래는 밤을 새서 소설을 읽고, 첫 자작 소설을 시도한 후 독자의 반응을 판독하며 보다 잘 쓰기 위한 연구를 거듭한다.

재미는 곧 열정으로 바뀐다. 열정은 관심사를 불러내고 고유의 영역을 구축하게 한다. 미래가 곧 다양한 관심사를 지닌 ‘오타쿠’ 그룹에 들어가는 것처럼, 그들이 가진 열정이 바로 그들이 누구인지를 말한다.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자신이 몰두하는 일로 스스로가 누군지를 증명하는 셈이다. 또한 미래는 좋아하는 행위에 푹 빠져드는 일에서 깊은 안정감을 얻게 된다.

피상적으로 바라보던 대상을 제대로 알게 되면 ‘대상화’에서 벗어난다. <여중생A>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서사 속에서 편견과 실제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를 증명한다. 정확히는 미래의 시선을 좇아 ‘발견된다.’ 미래가 태양을 처음 좋아하게 되었던 건 태양의 외모가 게임 속에서 동경하던 길마의 캐릭터와 닮아서였다. 미래는 곧 태양을 대상화하던 일에서도 벗어난다.

 

‘다시쓰기’, 자기 힘으로 쓰는 새로운 서사

 

<여중생A>의 타이틀 장면은 가판대에서 신문을 펼쳐보는 미래의 모습이다. 그 신문에는 바로 ‘아이피녀’로 마녀사냥을 당하던 친구 김유리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미래가 쓴 소설을 미담으로 칭찬하는 기사가 실려 있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 미래가 가장 큰 보람과 성취감을 느꼈으리라 짐작되는 이 장면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 주제는 바로 새로운 서사를 통한 (자기) 구원이다.

 

 


 

일진이던 김유리는 미래의 도움을 받아 오명에서 벗어나고 인기를 얻기까지 한다. 또 미래는 재희와의 교류를 통해 자기 서사를 새로이 써 나간다. 현재희 또한 아픔을 극복하고 자기 서사를 새로이 써내려고 노력한다. 재희는 언뜻 보면 미래의 멘토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또한 미래와 같은 아픔을 품고 있다. 재희는 예전에 일진과 어울려 다녔고, 학교폭력으로 인해 입원생활을 해야만 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스스로에게 써 주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성격, 자신의 특징,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변화하고자 하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건 자기 자신의 내적 변화다.

미래의 담임 선생님도, 진재현 작가도 좋은 어른들이지만 미래에게 필요한 답을 대신 써 줄 수는 없다. 누구에게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 이상 스스로를 가장 잘 아는 건 자신이다. 사람은 움직이므로 ‘낙원이 될 수’ 없고 그래서 ‘스스로 지속가능한 낙원을 가꾸겠다’는 미래의 말1)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자기를 자기 지옥에서 데리고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렇지만 이와 별개로 사람은 ‘포기하고 싶을 때’에 누군가의 아주 작은 용기나 배려로도 다시 힘을 낼 수 있다. 마치 미래가 운동을 못 하는 양선이가 부끄럽지 않도록 오래달리기를 경보로 끝까지 함께 뛰어줬을 때처럼 말이다. 그래서 ‘연결’은 여전히 소중하다. 자기 서사를 ‘새로 쓰는 일’은 혼자만의 힘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우호적인 환경에서 힘을 얻을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나가며 : ‘덮어쓰시겠습니까? (Y)’

 

<여중생A>는 2000년대 초반(밀레니엄~월드컵 세대)에 10대였던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10대에 느끼는 울적함과 외로움은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은 자신의 그 시기를 반추해보게 하고, 그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이 시기가 지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안게 된다. 외전인 동창회 장면에서 나오는 미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안도한다. 미래가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잘 성장했기 때문이다. <여중생A>는 우리에게 이 같은 순간에 이르는 과정을 (다시금) 체험하도록 한다.

가장 예민하고 민감한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은 점차 무뎌진다. 그렇지만 처음 트라우마를 입었던 순간은 누구에게나 사라지지 않고 과일 속 씨처럼 그대로 박혀 있다. 그러다가 아주 생경한 순간에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어떤 단어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에 맺혔던 일이 생각나 눈물이 자꾸 흐르기도 하고, 두려워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는 몸이 굳어 부들부들 떨기도 한다. 분명 새로운 상황과 사람을 만나는데도 이전에 상처받았던 경험 때문에 지레 겁먹고 나쁘게 생각하기도 한다.

미래는 은따였을 때 소풍을 다녀왔던 놀이공원에 재희와 다시 가서 함께 논다. 그 곳에서 재희와 보낸 추억은 미래의 어두운 기억을 대체하여 놀이공원을 더 이상 기분 나쁜 장소가 아닌, 친구와 즐겁게 놀았던 곳으로 만들어 준다. 원치 않는 기억을 마음에 드는 기억으로‘덮어씌우는’ 일,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쓰는’일은 사람에게 다시 살 원동력을 만들어 주고 희망을 무기삼아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지 않을까? <여중생A>는 작품을 통해 이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한때 미래였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그토록 다다르길 원했던 ‘미래’다.

 

주)

1) 미래의 이 대사는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의 변주다. 이 구절은 불세출의 히트작 <베르세르크> 속 가츠의 대사로, 가히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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