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리뷰
작성일 2018.09.10 조회수 50

나를 완성하는 여정

<아스테리오스 폴립>, 데이비드 마추켈리

 

박근형(만화평론가)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는데.” 아픈 발바닥을 들여다보며 중년 남자는 이혼한 아내를 떠올린다. “‘구두다움의 본질’의 반격이 아닐까?” 남자의 말에 아내는 웃으며 답했더랬다.

 

 


 

하이데거는 존재자들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인 관계는 인식 자체를 목표로 하는 순수한 인식이 아니라 어떤 것을 도구로 사용하는 고려라고 주장했다. 도구를 사용할 때 우리는 도구 자체보다는 도구를 사용하는 목적과 사용되는 대상에 집중한다. 우리가 구두에 진정으로 관심을 가질 때는 구두가 훼손되었거나, 구두에 문제가 생겨 발이 아팠을 때뿐이다. 사람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사람이던 사물이던 주변 존재자들을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대하게 되면 모든 것이 목표 실현을 위한, 혹은 그에 방해가 되는 도구가 되며 진정한 존재 간의 교감이나 소통은 불가능해진다.

거창해 보이지만 우리 모두가 일상적으로 범하고 살아가는 우(愚)다. 중년 남자, <아스테리오스 폴립>도 그랬다. 그의 아내, 하나가 떠나고 상심에 잠겨 지내던 아스테리오스는 그녀를 되찾을 여정을 떠난다. 비록 출발은 우발적이었을지언정, 그의 여로는 막중한 과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인간적 결함을 극복하고 진정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작가 데이비드 마추켈리의 그래픽노블 <아스테리오스 폴립>은 그리스 신화와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하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사랑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스테리오스의 성장담을 영웅 서사의 형식을 빌려 들려준다. 아스테리오스는 현상 세계에서는 잠시 그의 일상적인 삶에서 가장 멀리 벗어났다가 그의 아내 ‘하나’를 찾아 떠나며, 내면세계에서는 그의 죽은 쌍둥이 형제 ‘이그나지오’를 만난다. 여기에 그와 하나의 과거사까지, 총 세 갈래의 이야기가 하나의 큰 태피스트리를 엮어간다.

 

아스테리오스의 ‘진실함’

 

고대 그리스의 희극 시인인 아리스토파네스는 <향연>에서 우리 반쪽 인간들은 다른 반쪽을 만나 사랑을 함으로써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스테리오스의 문제는 모두가 각자의 존재 방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자들이라는 것을 망각했다는 점이었다. 아스테리오스 부부가 그의 부모님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그는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으므로 이브는 아담의 DNA를 복제한 클론이며, 일종의 쌍둥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대상을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 물리적, 표면적 속성들을 관념화, 추상화하였지만 대상의 존재방식은 고려에서 배제하였다.

 

 


 

그는 이 작품의 다른 인물들과 달리 거의 얼굴 옆면만 보이는데, 이는 마치 고대 이집트 미술에 등장하는 인물을 연상케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인물 개개인의 개성을 표현하기보다는 우리가 개념적으로 알고 있는 인간 형상의 부분들을 가장 잘 드러내기 위해서 옆얼굴을 그렸다. 이러한 아스테리오스 얼굴의 조형적 연출은 세계에 이원적이며 체계적인 질서를 부여하려는 그의 사고방식을 반영한 듯하다.

 

이와 같은 그의 사고관은 출생과 성장과정에서 기인한다. 어린 아스테리오스는 성장하며 스스로에 대한 이상한 면을 인지한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는 자신이 거기 없는 것처럼 느끼면서, 혼자 있을 때는 누군가 자신 어깨 뒤에 있을 것이라는’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 불안감은 출생 시의 사건에 대해 알게 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는데, 그는 원래 쌍둥이였으며 다른 형제, 이그나지오는 제왕절개 출산 시에 죽었다는 것이었다.

 

 


 

아스테리오스는 의문을 품는다. ‘내 형제가 살아남았다면 그의 삶은 어땠을까? 나는 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스테리오스의 꿈속,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거대한 묘비에는 이그나지오의 이름 역시 새겨져있다. 아스테리오스는 그들의 생사가 엇갈린 것을 징병 추첨에 비유한다. 그가 보기에 그의 탄생은 복불복이었으며, 그래서 확률 게임에서 자신이 살아남게 된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내 삶이 온전히 나의 것인지에 관한 의심, 그리고 발생하지 않은 막연한 일들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옅게 만든다. 아스테리오스는 이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집에 일상을 24시간 녹화할 수 있도록 카메라를 설치한다. 그는 살아있는 그의 삶을 복제함으로써 이그나지오의 가상의 삶을 만들고, 그의 인생도 나와 같았을 것이라는 - 혹은 그가 함께 있다는 확신을 통해 위안한다. 대립, 대칭, 평형, 이분법과 같은 그의 세계에 대한 인식은 이러한 성장 배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아스테리오스의 만들어진 확신은 자신의 인식 체계를 ‘진실’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관점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창일뿐, 세계 자체가 될 수 없다. 그가 그의 존재 방식만이 진실이라고 믿었고, 하나를 비롯한 다른 존재자들은 수단으로 전락했다. 아스테리오스의 오만함은 스스로에게만 몰두하게 만들어 결국 사랑하는 아내를 상처 입히는 결과를 낳았다.

 

이그나지오의 역할

 

도입부, 아스테리오스는 혼자 하나와의 첫 저녁식사를 녹화한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그때 엄청난 번개가 치고, 그 순간 번갯불에 비치는 아스테리오스의 그림자는 마치 누워있던 이그나지오가 깨어나 뛰쳐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제우스의 주(主) 무기가 번개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 장면은 마치 <항연>에서 언급된 구형 인간이 신들의 징벌로 쪼개져 두 개의 반쪽으로 나뉘었음을 비유하는 듯하다. 번개로 인해 발생한 화재 때문에 아스테리오스의 녹화된 비디오는 모두 소실되며, 이후 이그나지오는 이야기의 화자로 등장한다. 그는 아스테리오스에게 일어났었던 일들,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주로 아스테리오스의 관점에서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이그나지오는 작중 총 3가지 경우에 등장한다. 첫 번째 화재가 났던 날 밤, 아스테리오스가 지하철을 타러 갔을 때 이그나지오는 형체가 아직 없는 모습으로 그를 쫓아갔다. 두 번째 아스테리오스가 그를 심리적으로 의식할 때 그는 그림자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이그나지오가 아스테리오스의 꿈속에서 특정한 목적을 달성해야 할 때 온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그나지오는 아스테리오스의 꿈에서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아스테리오스의 꿈속에서 단순한 반신이었다가, 어떤 가능성이었다가, 아스테리오스 자체로 변화한다. 그리고 여정을 통해 내적인 성장을 이룬 아스테리오스가 그를 제거함으로써 자아 통합을 이루게 한다. 이그나지오는 화자인 동시에 아스테리오스가 불안감에 만들어낸, 그래서 극복해야 하는 자아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자신의 시간을 복제함으로써 안도감을 느꼈던 아스테리오스는 오히려 이그나지오가 꿈에서 아스테리오스와 똑같은 삶을 살았던 것처럼, 혹은 그의 삶을 자신이 살았던 것처럼 이야기하자 견디지 못하고 무기를 휘두른다.

 

 


 

또한 이그나지오는 꿈속에서 다음에 일어날 일을 상징적으로 예측하게 하거나 아스테리오스가 직면한 문제에 간접적으로 도움을 준다. 아스테리오스의 꿈에서 이그나지오는 많은 건축물을 실제로 지은 대단한 건축가로 등장했다. 마치 아스테리오스가 페이퍼 아키텍트(종이 위의 건축가;그는 설계로 유명한 건축가이지만, 그 설계를 바탕으로 실제로 지어진 건물은 없었다)로 명성이 높았던 점을 상기해보면, 이 꿈은 페이퍼 아키텍트와 실제 건축물을 건설한 건축가 사이에 위상을 나누려 한다기보다는, 아스테리오스가 결국 이뤄낸 것은 그만의 세계의 허상이었을 뿐이며, 현실에 존재하는, 공존하는 실체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꼬집는 것이리라. 꿈을 꾸고 난 후, 아스테리오스는 스티프가 잭슨이 올라갈 놀 나무집 짓는 것을 도움으로써 드디어 그의 첫 건축물을 완공한다.

 

 


 

마지막 꿈에서 이그나지오는 스티프의 오래된 캐딜락의 기계 엔진을 떼어내고 해바라기 화분 두 개를 그 자리에 놓는다. 실제로 스티프는 캐딜락이 태양열로 갈 수 있도록 엔진을 떼어내고 태양열 배터리 두 개를 대신 연결했다. 아스테리오스는 그것을 타고 하나에게로 떠난다. 이러한 이그나지오의 역할은 마치 영웅의 모험에서 그를 인도해주는 신탁 혹은 예언자를 보는 듯하다.


영웅의 여정

 

아스테리오스의 여정은 신화 전설 속 영웅의 서사와 흡사한 루트로 진행되는데, 신화종교학자 조셉 캠벨은 영웅의 모험을 ‘분리-초대-귀환’이라는 패턴으로 분석했다. 영웅은 먼저 일상적인 세계를 떠나 모험을 떠나고, 시련을 겪으며, 원래의 세계로 돌아오는 순환의 과정을 거친다.

‘분리’ 단계에서 아스테리오스는 아파트 화재로 인해 불가피하게 일상을 잃어버리지만, 변화에 대한 소명 의식을 가지고 길을 떠났다. 그가 지금까지의 삶의 궤도에서 가장 먼 곳에 다다랐기 때문에 도착한 마을 이름은 Apogee(원지점;지구 주위를 운동하는 인공위성이나 위성의 궤도 중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점)가 된다. 두 번째 과정인 ‘초대’에서 그는 그곳에서 정비공 스티프와 스스로를 여신이라고 칭하는 어슐러와 같은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기존의 자신과는 달라지고자 노력한다. 그는 이제 하나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볼 수 있다. 비록 한쪽 눈을 잃는 사고를 겪었지만 아스테리오스는 용기와 확신을 얻는다. 마침내 그는 Apogee를 떠나 원래 궤도로 ‘귀환’ 한다. 하나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오디세우스에서 폴리페모스로

 

이 외에도 <아스테리오스 폴립>은 작중에서 다양한 신화 속 영웅들의 요소를 차용하고 있다. 그가 쌍둥이로 태어났다는 점은 어렸을 적 벽에 붙여둔 이미지 속의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제왕절개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신화 속 등장인물은 아니지만 카이사르를 연상케 한다.

그중에서도 아스테리오스를 주로 비유하고 있는 대상은 오르페우스와 오디세우스다. 그의 잃어버린 아내를 찾아 떠난다는 서사의 골격은 자연스럽게 오르페우스를 떠올리게 한다. 초반부 어두컴컴한 지하철역을 지나 터미널에서 수중에 가진 돈 전부로 버스 티켓을 구입하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스틱스 강을 건너 저승으로 들어가기 위해 뱃사공 카론에게 삯을 지불하는 오르페우스다. 하나가 윌리 일리엄과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제목도 <지하세계의 오르페우스>였다. 무엇보다도 아스테리오스 자신이 크리스토프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장면을 인용하여 본인과 하나를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에 빗대었다.

 

 


 

한편 아스테리오스가 주로 머무르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곳은 오디세우스의 고향과 이름이 같은 이타카이다. 학생이 데이트 신청을 하는 장면에서 아스테리오스는 스스로를 세이렌의 유혹을 받는 오디세우스로 비유한다.

그러나 이처럼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처럼 보이던 그의 존재는 후반부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맞이한다. 영웅 오디세우스가 한쪽 눈을 잃고 괴물 폴리페모스가 되는 것이다. 시련의 과정을 통해 그는 아내가 떠나고 그가 남겨진 것이 아난, 자신이 그녀를 ‘떠나보낸’ 것임을 깨닫는다. 그는 지금까지 성취하는 자였고 주목받는 자였지만, 사실은 한 눈으로만 세상을 재단해왔던 외눈 박이었다. 그의 아버지 유지니어스는 이민 시에 성(姓)의 반절을 잃어버렸다. POLYP에 잃어버린 나머지 철자를 합하면 POLYPHEMUS가 될 것이다.

 

무엇을 위한 여정인가

 

조셉 캠벨에 따르면 영웅의 모험적인 여행은 성취하거나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재성취, 재발견하기 위한 노력’이다. 아스테리오스는 발에 생긴 물집을 보고 하나의 말(‘구두다움의 본질’의 반격이 아닐까?)를 회상한다. 그러자 그녀에 대한 수많은 기억이 그의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의 사고의 흐름에서 하나는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는 부족하고 어리숙하여 아스테리오스가 이끌어야 하는(지금까지 아스테리오스가 그녀를 고려해온 방식인) 하나. 그녀에 대한 일화는 아스테리오스를 상징하는 푸른 배경의 컷으로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반면 두 번째 하나에 대한 기억은 하나를 상징하는 분홍색 배경의 컷들에 나타나는데, 그 컷에는 아주 사소한 일상적인 일부터 첫 데이트 날까지 수많은 시간들의 그녀가 표현되어있다. 이 두 번째 하나는 언어로 규정하기 힘든, 수많은 하나, 그저 그 자체로의 하나다. 많은 컷들이 배치된 사이사이 보라색 배경에 붉은색 머플러를 두른 하나가 등장하는데, 이 컷들은 결말부에서 아스테리오스와 하나가 언급하는 유럽 여행에서 있었던 일의 기억이다. 유럽여행에서 그들은 역에서 길이 엇갈려 하마터면 타국에서 서로를 잃어버릴 뻔했다가, 아슬아슬하게 재회한 적이 있었다. 아스테리오스가 그 순간에 마지막으로 회상한 것은 그 재회의 순간이었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독자들은 감각적으로 아스테리오스의 의식의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 구두가 망가지고 나서야 그것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듯, 아스테리오스는 하나를 잃고서야 그녀를 만난 것이다.

 

 


 

나를 완성하고, 너를 만나고자 하는 일. 참으로 소소해 보이지만 우리는 안다. 괴물을 때려잡고, 왕위를 계승하고, 왕족과 결혼하고, 사람들에게 영웅이라 불리며 칭송받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그래서 아스테리오스의 여정은 일상적이면서 영웅의 그것과도 가깝다.

그리하여, 아스테리오스는 태양열로 달리는 캐딜락을 타고 하나를 다시 만날 수 있었을까? 결말을 확인하는 즐거움은 새로이 <아스테리오스 폴립>을 읽을 독자들에게 맡긴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야기가 어떤 엔딩을 맞이하더라도, 아스테리오스가 스스로의 오만함을 깨닫고 변화하고자 하는 순간 그의 모험은 이미 도착지를 한걸음 남겨둔 지점에 와있으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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