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리뷰
작성일 2018.08.02 조회수 200

기이한 치유의 여정, 기로

<기로> (구들 작)

 

박근형(만화평론가)

 

사랑의 어원에 대한 가설 중 한자어 ‘사량(思量)’이 사랑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사량(思量)’은 글자 뜻 그대로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뜻이다. 사랑의 이전 어형인 ‘+랑’은 사랑(愛)보다는 ‘생각하다’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았으나, 16-17세기에 ‘+각’이 사(思)를 뜻하게 되며 ‘+랑’은 현대적 의미의 사랑만을 의미하게 되었다. 확실한 어원은 알 수 없어도 사량이 사랑이 되었다는 가설에 자연스레 설득력을 느끼게 되는 것은 사랑의 본질 중 한 성격이 사량 그 말대로 생각하고 헤아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헤아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인가에 대해 짐작하여 가늠하거나 다른 것에 비추어 살피는 것이라고 했다. 타인의 마음이 나를 초월한 영역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짐작’ 하고 ‘가늠’하며, 다른 것에 ‘비추어’ 살필 수밖에 없다. 사랑은 그렇게 알 수 없는 것을 애타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일이다.

 

 


 

도달할 수 없는 그 타인의 마음이란 것에 들어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 남자가 있다. 이름은 한기로. 이름 그대로 기로에 섰다.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기는커녕, 증오하는 이들의 깊은 곳을 보아야 하는 형편이다. 아내 수연과 언젠가 아이슬란드에 가서 평화로이 사는 삶을 꿈꾸었지만 주식 사기를 당한 데다 회사까지 그만두게 됐다. 끔찍한 악몽이 반복되면서 인터넷에서 찾은 병원에서 심리 치료를 받았지만, 당장 다음 날부터 거미의 모습을 한 환각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다시 찾아간 병원은 불법 의료 서비스 업소로 문을 닫아버렸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기로와 지칠 대로 지친 아내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환각으로 나타난 거미, 익토미는 기로가 최면에 걸렸을 때 무의식에 등장했던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속으로 들어가야 이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 종용한다. 이판사판이다. 직장도 아내도 잃었고, 더 이상 대안도 없는 기로는 그들을 한명씩 찾아간다. 자신을 퇴사하게 만들었던 팀장. 주식 사기로 거액의 빚을 안긴 전 직장 동료. 친구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곤 했던 고등학교 동창. 바람을 피웠던 전 여자친구. 비밀을 지키기 위해 침묵했던 가장 절친했던 친구. 마침내 기로와 가족에게 상처를 안겼던 중학교 교사였던 인물까지. 기로는 익토미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꿈과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 당사자들이 마음속에 가두어놓은 것을 찾아냄으로써 그들을 치유한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 고통을 안겨준 이들을 치유해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것을 익토미는 일방적인 해결이 아닌 ‘교류’라 불렀다. 이 치유의 과정이 양방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기로가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당사자들의 허락이 필요하다.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기로는 그들의 무의식에 들어갈 수 없다. 기로가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대상들이 가둔 것을 발견하고 문제를 해결하면, 기로가 돌아가거나 교류 대상자를 그의 마음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틈’이 열린다.

이 틈은 사르트르의 ‘하나의 작은 균열’ 개념을 연상케 하는데, 그는 나의 세계에 타자가 출현하는 것은 나 중심의 세계에 균열이 생기는 일이라고 보았다. 나의 세계에 속했던 대상들은 타자를 향해 그 균열의 구멍으로 끊임없이 흘러나가, 나의 세계는 무너지고, 타자 중심의 새로운 세계가 나의 세계 위에 겹쳐 재정립된다. 그 세계에서 나는 타자에 의해 바라보이는 대상, 객체다. 이렇듯 주체가 타인을 객체, 사물이 아닌 또 다른 주체로써 바라볼 때 그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기로가 다른 이의 마음속에서 본 기억, 트라우마, 감정과 같은 심리적 요소들은 교류 대상자 중심의 세계를 발견하게 했고, 그들은 증오할 대상-객체가 아닌 하나의 또 다른 주체가 되었다. 타인을 해방시키기 위해 들어간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기로는 진정한 타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로는 타인을 발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틈’을 통해 진정한 치유의 단계로 나아간다. 그 단계란 타인으로 하여금 마찬가지로 기로 자신이라는 주체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첫 번째 교류에서 기로는 그의 해고에 일조한 팀장 속에 있었던 ‘얼굴 없는 아이’를 그의 마음속에 데려가며 기묘한 통증을 느낀다(“이제껏 한 번도 감각을 느껴본 적이 없던 곳에서 전해져오는 아픔이었다. 내 안에 이렇게 깊숙한 곳이 있었나 싶을 만큼 아득하게 전해져 오는 육중한 아픔”(20화)). 그것은 나 중심의 세계를 허물고, 타자의 세계에서 기꺼이 객체가 되고자 하는 자가 느낄 수 있는 타인의 통증이다. 교류 후 기로의 해고에 일조했던 조 팀장은 회사 부도 때문에 실직할 예정인 직장 동료들을 최대한 거래처로 이직할 수 있도록 돕고, 기로에게 주식 사기를 쳤던 덕규는 연인에게 거짓된 자신의 실체에 대해 밝히고 헤어진다. 기로는 교류한 이들을 용서한다고 표현하지는 않지만 더 이상 그들을 증오하지도 않는다. 그들도 기로에게 사죄하지 않지만,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해간다. 자기 지키기에 급급하여 결국 자기를 외면해버린 사람들이 마침내 나를 넘어 타인의 세계에 발을 넣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타자의 발견은 나 자신의 존재 역시 발견하게 하는데, 타인은 나를 바라봄으로써 내가 모르는 ‘바라보인 모습’, 나의 존재 근거를 알고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기로는 예전 여자친구였던 민주의 마음 안에서 거꾸로 자신의 상을 보았다. “민주의 속에서 나를 봤어.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있었지. 머리통이 들락날락할 만큼. 손상된 거야. 마치 네 소설 속 표현처럼.” “허구 치고는 너무 진지한데...”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해 넌 알고 있지?”(103화) 기로는 민주의 마음속에서 본 가슴에 공허하게 뚫린 자신을 회상하다 수연의 꿈을 꾼다. 기로는 가슴의 구멍 때문에 수연이 다가오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수연은 구멍이 뻥 뚫린 기로의 가슴을 들여다보며 미소 짓고, 직접 그 안으로 들어가 기로 안의 공허를 채운다. 기로 역시 가슴을 감싸며 미소 짓는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된 기로는 수연이 결핍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었던 것을 깨닫는다.

 

초반부 기로를 떠났던 수연의 마음은 기로가 그녀가 오래전 보냈던 메일을 뒤늦게 읽으며 드러난다. 수연은 이제 기로의 상처와 그와의 타자로서의 거리를 받아들이고, ‘없는 것’이라고 단정했던 기로의 환각을 ‘당신에겐 보이지만 내겐 보이지 않는 것’으로 표현한다. 기로의 ‘교류’는 우리 안에 있으나 고통과 악순환 속에서 감춰진 것들을 찾아내고, 소외된 것들을 다시 흐름 속에 둠으로써 마음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게 하는 치유의 과정이었다. 기로와 교류한 이들은 악순환에서 벗어나 어딘가 손상된, 손상될 수밖에 없었던 ‘나’를 만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들을 치유하며 마찬가지로 타인과 자신을 수용할 수 있게 된 기로는 마침내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던 수연에게 혼잣말이나마 사과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다. 마지막 교류가 끝났을 때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익토미는, 추위에 떠는 기로에게 거미줄을 감아주고 그제서야 떠나간다.

 

 


 

<기로>는 존재와 소통에 대한 개인의 소임만을 묻는 작품일까?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에서 소설과 공감에 대해 다룬 부분을 읽는다. “(...) 어쩌면 우리의 공감능력은 이미 충분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문제는, 공감 능력 따위는 과감히 내던지고 앞만 보면서 달려가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도모해나갈 수조차 없는 시스템의 압력 때문에, 우리가 애써 공감을 거부하고 있는데 있지는 않을까.”(280p) 이처럼 <기로>는 개인의 심리를 다룰 때 놓치기 쉬운 사회에 대한 논의를 빠트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외면하고 사는 현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아이러니한 세상에서 소외는 비일비재하다. 프롤로그에서 수연과 기로는 언젠가 아이슬란드로 떠날 날을 꿈꾼다. 그들이 그리는 것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세상이다. “우린 이방인일 테니까 귀하게까진 아니라도 멀쩡한 정신으로 살 순 있겠지.” “가능할 거야. ‘그곳의 풍경은 매우 삭막하고 솔직하다, 상당히 구식이지만 복잡한 느낌은 없다. 그래서 아이러니가 별로 없다.’ 라잖아.” “하긴 여기는 아이러니로 끓어넘치니까 (...)” 빚에 퇴사까지 한 기로는 좋은 병원에서 심리치료를 받을 형편이 되지 않아 인터넷에서 가급적 저렴한 병원을 찾으려고 애쓴다. “이런 상태로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어. 어떻게든 나가야 해. 내게 일어난 일 따위 알 바 아닌 세상이잖아.”(6화) 인간성보다는 조직과 시스템, 본질보다는 껍질을 중시하는 부조리한 모더니즘의 세계.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그 병폐는 기로의 마지막 교류 대상인 구준서 교육감이라는 상징적인 인물로 드러난다.

 

수연과 기로는 마침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약속했던 종착지 아이슬란드에 다다른다. 그녀 역시 기로 못지않게 지난한 과정을 통해 아이슬란드에 도착했을 것이다. 소원했던 대로 아이슬란드에서 대구잡이를 하는 기로는 전편을 통틀어 가장 평온한 얼굴을 보인다. 그것은 아이슬란드가 그들이 바랐던 대로 ‘아이러니 없는 솔직한’ 곳이어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이 거기까지 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수연은 아이슬란드에서 그녀의 첫 작품인 기행문 를 발간한다. 아마 미래를 향한 앞으로의 희망을 담은 이야기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기로>의 여정은 이렇게 낙관적인 기대와 함께 마무리를 짓는다. 거창한 액션도, 진한 러브 신도, 자극적인 연출도 없이 127화나 되는 이야기를 힘 있게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은 <기로>가 가진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력과 애정 덕분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로에게 나타났던 익토미를 돌아본다. 기로는 익토미가 그의 귀에서 나와 다른 이의 귀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타인의 마음 안으로 들어갔다. 왜 귀에서 귀일까 의문을 가져본다. 누군가 말하고 누군가 듣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일방적인 행위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자 하는 배려 어린 관계를 꿈꾸는 마음이 시각적으로 표현된 것은 아닐지.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뜨거운 품으로 안지 않아도, 밀어를 속삭이지 않아도, 너와 나를 조금 더 생각하고 헤아리는 것, 거기에 사랑이라는 것이 가진 힘이 있다. <기로>의 컷과 컷 사이에, 대사의 단어와 단어 사이에 배어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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