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리뷰
작성일 2018.07.20 조회수 700

마니아, 직접 취미 독서를 논하다!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유희 그림, 이창현 글)

 

지덕재(만화평론가)

 

※ 아래 글은 <익명의 독서중독자들>의 전개 속에 배치된 재미 요소를 누설하고 있어, 작품을 읽기 전에 보시면 감상에 지장이 갈 수도 있습니다.

 

다음 웹툰에 올 4월부터 연재되기 시작한 <익명의 독서중독자들>이 지닌 키워드는 코믹, 지식, 그리고 독서다. “들고 읽어라!”는 강한 제언은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을 지은 이미지 속 등장인물들과 어우러져 기묘한 재미를 자아낸다. 뚜껑을 열어보면 이 작품은 과연 독서, 그것도 꽤나 ‘하드코어한’ 취미로서의 독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점의 시대를 지나 PC통신과 인터넷, 스마트폰을 넘어 5G를 이야기하는 현 시대에 다시 ‘책읽기’로 돌아가 보는 웹툰은 제법 신선한 느낌을 준다. 독서 행위의 절대적인 실제 점유율이 떨어지고, 깊은 독서를 즐기는 독서가들이 다수 대중에서 하나의 서브컬처(취미) 애호가 집단으로 변해 가는 양상을 반영한 것처럼 보인다. <익명의 독서중독자들>은 바로 현재의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1화에는 페이크 주인공 ‘노마드’와 ‘경찰’이 등장한다. 가볍게 독서 모임에 참석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독서 클럽에 나간 그들은 서로를 닉네임으로만 부르자고 정한, 비주얼이 범상치 않은 구성원들과 만난다. 그들은 도시 속에서 시간을 내어 만나 철저히 취미 독서와 관련된 영역만을 공유하는 사이다. 2화에서는 모임에 새로 입회한 ‘경찰’을 위한 독서클럽 회원들의 소개가 등장한다. 다독하는 장서가이며 듬직한 수염을 가진 남성 ‘슈’, 역사와 정치학과 사상사를 즐기며 친구가 없는 여성 ‘사자’, 그리고 오직 독서만을 관심 영역으로 지닌 ‘고슬링’, 그리고 정체불명의 ‘예티’와 더불어 늘 사회자를 맡고 있는 ‘선생님’이 있다. 이들은 서로의 사생활을 모르며 그들 각각의 사생활은 오직 독자만 볼 수 있다. 여기에 구성원의 실제 삶은 필요하지 않다. 연령도, 성별도, 심지어 인간이 아니어도 자기가 읽고 있는 책과 취향에 관해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다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인터넷 환경의 특징을 그대로 가져온 듯하다. 오늘날 자생하는 많은 독서모임이 인터넷을 매개체로 결성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의미심장하다. 뿐만 아니라 아마도 현실에서의 정체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어떤 모임의 특성이 될 수도 있다. 실제 사람이라기보다 기호에 가까운 인물이 등장하여 온갖 기이한 행동을 해도 작품 안에서 아무 문제 삼지 않는 이러한 환경은, <멋지다 마사루!> <크로마티 고교> <불어봐 재규어> 등의 엽기 개그 만화를 계승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의미 없음’을 통해 오히려 ‘의미’에 더 가까워지길 도전하는 시도는 아닐지 추측하게 된다. 문제는 이 ‘의미 없는’ 만화 작법이 ‘독서’를 만났을 때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지에 있다.

 

 


 

독서클럽의 내부 구성원들은 서로의 독서 영역을 존중하고 바람직한 읽기 방법을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구절을 함께 음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1화에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에서 인용한 문구를 음미하는 컷에 등장하는 푸른 하늘과 구름 배경이 이를 보여 주는 식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방침과 어느 정도 일치하면 새로운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해 준다. 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 비극을 즐겨 읽는다는 프락치 ‘경찰’은 그렇게 독서 클럽 입회에 성공한다.

 

그들은 ‘익명성’을 지닌 채 오직 탐독하는 서적의 종류와 행위와 어떤 읽기가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만 공감하고, 소통한다. 사실 독서 클럽 구성원들이 웹툰에서 말하고 있는 건 정말 독서를 수단과 목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만이 알 만한 정보이긴 하다. 예를 들어, 새로운 책을 고를 때 목차부터 보고 책의 성격을 파악한다거나 각주가 있는 책을 읽는 방법 등은 대학원생이 자연스럽게 배우는 독서 기술에 가깝다. 그리고 까* 출판사의 표지가 대대로 괴이하다거나, 혹은 세간 사람들이 알기 쉽지 않은 마이너한 작가의 인용구 등은 책에 관해 오랫동안 알아온 마니아들이 낄낄거리며 함께 나눌 수 있는 농담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이 독서중독자들은 책에 관한 지식으로서 자신도 모르게 힙한 면모를 과시한다. 그렇기에 이를 강하게 동경하는 등장인물들 또한 이 작품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첫 자기소개에서 “자기 계발 서적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라고 당당히 외친 후 쫓겨난 노마드나, 컴공과 대학원생이자 소설가 지망생이지만 독서의 폭이 지나치게 좁고 이상한 소설을 쓰는 로렌스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기존 독서클럽 구성원들의 무안과 지적을 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광대 같은 캐릭터라 봐도 무방하다. 작품 속에서 화자를 자처하는 등장인물이 있다면 화자의 말이 향할 대상도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 독서중독자들에게 계속해서 무안을 당하는 이 독서 클럽 입회 꿈나무들은 전혀 불쌍하지 않다. 그들은 읽고 쓰는 행위에 대한 편견을 실제의 읽고 쓰기에 투영하면서, 결과적으로는 계속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독서하는 나’, ‘소설을 쓰는 나’라는 자아 이미지에 어느 정도 자아 도취되어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 이 웹툰 속 등장인물들은 자기계발서나 문학 서적보다는 비문학 도서를 권장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세간에 널리 읽히고 팔리는 주력 분야를 일부러 배제하려는 의도가 있겠지만, 이는 또 다른 면에서 취향에 위계를 부여하는 스노비즘적 시선이다. 읽는 사람의 견해 차이만 있을 뿐, 독서 장르 자체에는 경중이 있을 수 없다.)

 

작품은 이런 힙스터로서의 ‘독서중독자’들을 ‘코미디’라는 다소 냉소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다. 희곡 이론에 따르면, 희곡의 장르인 비극과 희극의 뿌리가 되는 ‘감정’은 서로 다르다. 비극(tragedy)은 관객의 마음을 요동시키는 뜨거움에서 나오며, 관객이 등장인물의 슬픔과 상처에 공감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자아내 카타르시르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반면에 희극(comedy)의 핵심은 차가운 냉소다. 등장인물에게 이입하는 게 아니라, 등장인물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심리적인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데서 ‘웃음’이 발생한다.

 

<익명의 독서중독자들>이 취하고 있는 엽기 개그만화적인 분위기, ‘의미 없는’ 작법은 이런 점에서 매우 효과적이다. 이 작품에서 심리적인 거리 두기는 이중적이다. 첫 번째로, 독서 클럽 회원들은 노마드와 로렌스를 결코 독서클럽 회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작품 내에서도 자기계발서적 생활에 몰두하는 노마드나, 해괴한 소설을 진지하게 쓰는 로렌스의 모습을 희화하면서 이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두고 있다. 말하자면 ‘독자 및 독서클럽 회원들/노마드와 로렌스’라는 도식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작품은 여기서 한 차례 더 비틀어, 독자와 독서클럽 회원들 간의 심리적인 단절도 보여준다. 독자들이 친숙하게 여길 법한 이름이나 전사를 부여하는 대신 ‘사자’, ‘고슬링’, ‘예티’ 등 사람이 아닌 것들의 이름을 붙이고, 과장되며 현실성 부족한 행동을 ‘의미 없는’ 작법으로 보여주면서 독자들이 전적으로 독서클럽 회원들에게 심리적으로 이입할 수 없도록 제지한다.

 

독서클럽이 멋져 보여 가입하려고 하는 ‘무지한’ 입문자를 향한 독서클럽 구성원들의 태도가 마치 독자를 향한 작가의 계도처럼 보여 불편함을 표출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사실 그러한 의도 없이 자신이 보고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양상은 대단히 기이하다. 이를테면 오락실에 간 ‘고슬링’이 ‘불혹의 스나이퍼’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자신을 경외하는 초등학생들에게 인생과 독서에 관한 설교를 늘어놓는 장면은 정말로 이 사람이 좀 칠칠하지 못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즉 이 작품은 독서클럽의 외부뿐만 아니라 독서클럽의 구성원들도 코미디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사실 독서클럽 내부 구성원들도 독서를 잘하는 방법만을 알고 있을 뿐, 작품에서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진정한 독서 행위의 의미에 가닿는 일에는 어느 정도 실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독서를 잘하는 방법이나 기술만을 나눌 뿐, 자신이 이 책을 읽고 어떤 감상을 느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한, 독서클럽 구성원들 사이에도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바람직한 독서 행위란 책을 통해 일어나는 독자와 저자 사이의 깊은 만남과 소통일 테지만, 이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가 읽어나가는 책에만 코를 박은 채 한 번도 남에게 제대로 된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독서클럽 회원들은 남들보다 더 많이, 남들이 전혀 모르지만 고상한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때로 그들은 한 번 책장을 펼쳤다가 끝까지 읽지 못한 책이 있다 하더라도 이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진정한 독서가에게는 책을 다 읽지 못한 행위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이들의 독서에는 책의 내용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것이 부재한다.

 

이는 ‘읽기 행위’에 내재되어 있는 타인을 배제하는 특성이 극도로 실현된 상태이기도 하다. 상대의 삶에는 ‘관심 없어!’라고 말하면서 책과 관련된 부분만을 나누려는 경향이 바로 이것이다. (※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가장 최신화인 17화에 독서클럽 구성원들이 함께 ‘사자’의 집에 놀러가는 장면이 나오기에,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는 계속해서 지켜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읽기 행위’는 일차적으로는 타인을 신경쓰지 않는 고독한 행위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 남과 함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읽기 행위’를 통한 내용 이해는 타인에 대한 관심과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들의 ‘읽기 행위’는 철저히 양식화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들의 양식화된 행동을 과장된 개그로 그려내면서 독자로 하여금 인물들의 양식화된 ‘읽기 행위’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독서’ 자체를 소재로 삼은 웹툰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의의는 선명하다. 또 웹툰의 독자들에게 독서 행위에 대한 경종을 울려주는 효과도 분명 있다. 그러나 ‘독서란 무릇 이래야 한다’는 식의 계도적 성격이 짙기 때문에 그만큼의 반발 심리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니아들은 남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오로지 좋아하는 것을 더 탐식하기 위해 찾아간다. 학계나 출판 업계에 종사하지도 않지만 오직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발적으로 전문가에 비견하는 소양을 갖춘 딜레탕트가 된다. 그리고 서로의 독서 편력을 지지하고 응원해 준다.

 

 


 

사람들이 흔히 품고 있는 편견과는 달리, 그들은 어렵고 두꺼운 책을 읽는 일이 삶의 큰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들이 정말로 완전한 내용 이해 없이 오로지 독서 행위 그 자체에서 색다른 재미를 찾아낼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독서 행위에 얽힌 비입문자들의 편견과 미신을 타파하고 알지 못했던 재미를 발견하는 것. 웹툰 속에 등장하는 허다한, 양질의 인용문을 통해 어쩌면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 독서 행위의 숨은 재미와 묘미를 건네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나아가 ‘읽는 행위’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웹툰 속에 이름을 올릴 서적과 이 책들에 관한 등장인물들, 혹은 작가진의 애정 어린 시선이 계속해서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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