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리뷰
작성일 2018.06.22 조회수 351

<파워리뷰>

 

비정한 자매들, 주체이자 ‘히어로(hero)’로 거듭나는 여정을 밟다

<마스크걸> (매미 / 희새 작)

 

지덕재(만화평론가)

 

※ 아래 이어지는 내용은 웹툰 <마스크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웹툰 <마스크걸>이 드디어 완결되었다. 2015년 8월 15일에 연재를 시작한 이 작품은 지난 6월 2일에 3부 마지막 화가 게시되면서 장장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진 여정(총 3부 125화: 1부 29화, 2부 48화, 3부 48화)을 끝맺었다. 초반부에는 주로 외모권력과 관련된 위트와 사회풍자가 적절하게 조화되며 눈길을 끌었던 이 작품은 1부 후반, 주인공 김모미가 우발적으로 두 차례의 살인을 저지르면서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졌다. 그리고 2부와 3부를 통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국면으로 독자들을 이끌어나갔다. 연재 내내 독자들의 충격과 주목을 불러일으켰던 요소는 거침없고 파격적인 내용 전개뿐만 아니라, 감히 주체가 될 수 있으리라 상상하지 못했으나 작품을 통해서 생생히 드러났던 여성 인물들의 욕망과 목소리였다.

 

 


 

매미 작가와 희세 작가는 각 부의 후기에서 작품 속 장면을 색다르게 읽어낼 수 있는 여러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3부 후기에서는 결말에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미의 모습’을 마치 ‘다크 히어로’처럼 그리고 싶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코멘트는 작품 전체를 흥미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여지를 제공한다. 바로 <마스크걸>을 히어로물의 문법으로 읽어내는 일이다. <마스크걸>이 지닌 매력은 무엇보다도 기존 ‘히어로’물의 문법을 정확히 이용하면서 그간 웹툰에서 볼 수 없었던 빌런, 혹은 다크 히어로를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가상인물인 ‘마스크걸’의 궤적을 따라가는 동시에 현재 한국 사회 내부에 만연한 비정상적인 굴절을 들여다보고 있으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기까지 하다.

 

‘히어로(영웅)’란 누구이며, 과연 어떤 존재일까? 몇 년간 꾸준히 개봉해온 마블과 디씨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히어로 네다섯 명 이상은 거뜬히 손에 꼽을 수 있겠다. 슈퍼맨, 배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맨… 그리고 이들은 히어로로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 모두 강한 힘을 갖고 있으며, 히어로로 거듭나게 되는 강렬한 계기를 갖고 있다. 때로는 안위를 위해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도 하며, 그들의 존재는 언제나 대중과 언론 사이에서 숭배 혹은 논란의 중심에 있다. 그리고 빛에 그림자가 따르듯, 역시나 강력하면서 본질적으로는 닮은꼴인 악당과 공존하고 있다. (배트맨의 영원한 숙적 조커의 “You Complete me.”를 떠올려 보자.) 그렇다면 주인공 김모미는 위에 언급한 히어로의 조건을 충족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마스크걸>의 내용 전개 속에서 모미는 히어로가 되기 위한 조건을 모두 갖추게 된다.

 

우리는 많은 히어로물에서 낮에 평범한 회사원이나 고등학생에 지나지 않던 사람들이 밤이면 가면을 쓰고 완전히 다른 인물로 태어나는 것을 본다. <마스크걸>도 외모 변신을 통해 이중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는 인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주인공 ‘김모미’는 몸매는 뛰어나지만 얼굴이 예쁘지 않아서 외모 콤플렉스가 깊은 회사원으로, 밤에는 가면을 쓰고 인터넷 방송을 하는 BJ다. 몸매에 어울리지 않는 볼품없는 얼굴로 고통 받는 모미는 매일 밤 마스크를 쓰고 인터넷 방송의 스타로 거듭난다.

 

 


 

그리고 모미가 인터넷 방송을 통해 번 돈은 고스란히 성형을 하는 데 쓰인다. 언젠가는 성형에 성공해 마스크를 벗고 진짜 미녀로 거듭나 ‘온 세상의 관심을 받고 싶다’고 생각하던 모미의 꿈은, 아이러니하게도 살인이라는 강력 범죄를 발판 삼아서 실현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미의 본격적인 모험은 바로 이 때부터 시작된다.

 

모미에게 희생된 직장 동료 주오남의 어머니이자 모미를 끝까지 추격하는 김경자는 모미와는 정반대의 순서를 통해 인격을 구축한, 서사 속 ‘빌런’이라고 할 수 있다. <마스크걸>에서 이름을 속이거나, 성형으로 외모를 속인 이들은 모두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최소한 가담하게 된다. 모미에게 성형수술은 미모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김경자에게 (성형을 통해 만들어진) 이진국이라는 인물의 외모와 정체성은 철저히 복수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모미와 김경자 모두 성형을 통해서 이전과는 다른 인물이 되어 본격적으로 자기 욕망을 실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성형수술은 이제 이들이 ‘살인자’라는 진짜 정체성을 은닉하기 위한 수단이며, 스릴러물에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도구로 변모한다.

 

<마스크걸>에 등장하는 어머니들은 모두 모습은 다르지만 ‘속죄’를 강력한 내적 동기로 삼아 움직이고 있다. ‘김경자’와 ‘신영화’라는 대척점에 선 두 어머니를 통해 극단적인 양상을 볼 수 있다. 모미의 엄마 신영화는 딸을 보듬지 않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외손녀인 미모를 거두어 기르고, 김경자는 아들에게 집착하면서도 끝내 살해당하게 만들었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복수를 실행한다. 심지어 교도소에서 만난 ‘안은숙’ 또한 모미의 신장을 바쳐서 평생 잘해주지 못했던 딸에게 모성을 베풀고자 한다. 1부에서 3부까지 이르는 동안 모미를 중심으로 수없이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의 연대는 철저히 모성과 자매라는 토양 위에서, 인물들의 개인적인 욕망을 줄기 삼아 갖가지 행동을 꽃피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여성 인물은 지금까지 일종의 기호나 알레고리로만 취급되어 온 인물상을 대표한다. 인물들이 지닌 속성인 아줌마, 성괴, 성매매 여성, 불륜녀, (가짜) 페미니스트 등등은 대개 여성을 속단하고 대상화하는 기호로 흔히 활용되었다. 그러나 <마스크걸>에서는 각각의 인물들에게 오랜 시간을 들여서 쌓아 온 과거사를 부여하고, 이 인물들이 선함이나 악덕 대신 스스로의 욕망에 의해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이를 통해 <마스크걸>은 여성에게 그간 대상화로 가볍게 부여된 기호에 무게감을 주고 실재하는 인물로 다시 창조해낸다.

 

반면 이야기가 1부에서 다시 2부로, 그리고 3부로 심화되면서 이 작품 속 남성 인물들의 이미지는 점점 더 가벼워지고, 급기야는 사라져 버린다. 심하게 말해서 <마스크걸>은 ‘주오남’을 제외한 남성들에게 관심이 없다. 주오남을 제외한 남성 인물들에게는 과거사를 적극적으로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설사 그들이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 하더라도 철저하게 이야기 전개를 위한 도구로 움직일 뿐 결코 무게 있게 작품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3부에서는 아예 의미 있는 남성 인물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남성들의 빈자리는 여성 인물들 사이의 자매애와 모성으로 채워진다. 작가들이 후기에서 밝혔듯, 2부에서의 ‘모미’와 ‘라라(춘애)’는 잠시 자매 같은 연대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모미’와 ‘라라’가 실패한 자매들의 연대는 3부에서 무사히 어른이 된 ‘미모’와 ‘예춘’의 다정한 관계로 완성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주인공 모미를 ‘히어로’로 규정하는 일에는 큰 장벽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바로 ‘히어로라면 많은 사람을 지키고 구해낸다’는 특징이다. 인간의 선성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이 같은 히어로의 미덕은 가면을 쓰고 거침없이 사람을 죽인 강력한 살인자 모미에게는 일견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독방에서 성경을 읽고 갱생한 3부 중반 이후의 모미는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갈 자신의 딸 미모만을 지키려 하며, 그것도 간접적으로나 구해낼 따름이다. 이기적인 살인자이며 서사 속에서 누구도 구하지 못했던 김모미는 과연 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모미가 지키고 구할지도 모를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히어로는 히어로물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인 히어로는 온전히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발휘하는 주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 어떤 제약에도 시달리지 않는다. 우리의 주인공 모미에게 마지막까지 히어로물의 기준을 한 번 적용해 보자. 모미는 여성에게 요구된 사회의 뿌리 깊은 통념을 곧이곧대로 해석하고 들이받으면서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주체가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모미의 활약은 더 이상 없다. 그러나 모미가 그린 삶의 궤적을 보고 변화할 수도 있을 여성들은 서사의 안이 아니라 바깥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구해질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독자다. 이것이 완결된 <마스크걸>이 갖는 미덕이자, 작품의 존재 자체로 사회에 던져질 큰 질문이다. “당신은 이렇게까지 외모를 추구하게 만드는 세상이 과연 정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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