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리뷰
작성일 2018.01.26 조회수 744

개인의 기억, 기록으로 공유되다

<정가네 소사>

 

김성훈(만화평론가)

 

핸드폰에 카메라가 장착된 후 일상을 이미지로 남기는 것은 매우 손쉬운 일이 되었다, 하지만 불과 수십 년 전, 사진은 그야말로 ‘기억할 만한’ 행사에서나 접할 수 있는 특별한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이를 테면, 백일이나 돌 혹은 입학과 졸업처럼 앨범에 소장될 수 있는 ‘특징적인 사건들’에 한하여 사진으로 남겨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카메라 자체가 희귀했던 시절의 ‘개인적 사건들’은 어떻게 보전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기억에 의존해 구전됨으로써 되새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미지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오히려 흑백 사진 한 장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그 시절의 시간을 보여주는 기록들이 매우 희소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정가네 소사>는 그처럼 흑백 사진 한 장이 소중한 시절의 시간들을 복원함으로써 세월의 흐름 속에서 역사로 기억되지 못하는 평범한 이들에 대한 기억을 저장해 놓고 있다.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이 확산되고 ‘DSLR’이라는 용어가 대중화되었을 무렵, 서울의 ‘달동네’는 카메라를 손에 쥔 많은 이들에게 주요한 출사지가 되었다. 아마도 사진을 시작하는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신림동이나 흑석동 등 서울 곳곳에 위치한 달동네를 찾아 렌즈 속에 그곳의 풍경을 담았으리라. 그렇게 렌즈에 담을 수 있었던 달동네들 또한 이제는 모두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거의 사라졌지만, 달동네의 시간들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메모리 속에 저장되어 있을 듯하다. 이처럼 사라지는 시간들을 저장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정가네 소사>는 흡사 메모리카드를 연상시킨다. 옴니버스 형태로 진행되는 여러 에피소드들 속에서 주인공이 계속 바뀌지만, 작가 자신을 중심으로 하여 조부와 외조부에 관한 얘기로부터 진행되는 시간적인 흐름은 고스란히 한 세기의 시간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시간대로 따지자면 “증조할아버지가 농민군 대장 전봉준을 멀찌감치에서 바라보던 갑오년(1894) 동학혁명부터 현재”에 이른다. 다시 말하면 무려 100년이 넘는 시간을 아우르고 있다는 얘기다. 당연히 일제 시대가 배경이 되는 사연도 있으며, 군사정권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에피소드도 담겨져 있다. 특징적인 점은 이러한 개별 에피소드들이 교과서에 기록될만한 ‘역사적 사건’들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 있다. 즉, 독립운동가에 얽힌 잊지 말아야 할 기록도 아니며, 독재에 항거한 민주투사에 관한 숨겨진 얘기도 아니다. 그저 힘겹고 고단한 시간들을 견뎌온 평범한 이들에 대한 얘기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겠다. 그러니까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의 지나간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이다. 현실에서 사라지고 있는 달동네의 모습들이 메모리카드 속에 담겨져 있는 것처럼 어쩌면 소리 없이 사라졌을 수도 있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무엇보다 작품의 파인더 안에 들어온 여러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놓는 이가 저자 자신이라는 점은 작품이 지니는 생동감을 더욱 높인다. 즉, 저자 자신을 둘러싼 일가(一家)에 대한 기억이 이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외삼촌과 당숙, 그리고 저자의 형제들에 이르기까지 가족과 친척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저자가 태어나가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기억은 어머니의 입을 빌려 복원된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어린 시절 기억의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몇몇 동네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더해져 작품은 지극히 사적인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그러니 어찌 보면 작품을 보는 독자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품 속 인물들이 전하는 사연들은 그 시절을 거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겪은 일이기도 하기에 고스란히 우리 모두의 경험으로 되살아난다. 가령, 전쟁 통에 부모를 여의고 힘들게 성장했던 당숙이 돈을 벌기 위해 중동으로 떠났던 이야기나 남편이 돌보지 않은 자식들을 위해 어떤 고된 일이라도 해야 했던 외할머니의 사연 등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한편으로 가난했던 과거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렇게 작품이 기억하는 개인적인 시간들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록으로 치환되는 셈이다.

 

아버지,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

 

작품을 들여다보면 핵심적인 내용들은 작가의 집안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서도 특히 아버지와 얽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시간적인 흐름이나 서사의 구성이 명확하게 연대기를 만들고 있지는 않지만 에피소드의 상당 부분이 아버지의 성장기와 청년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로부터 어머니와의 만남과 결혼 그리고 작가의 형제들이 등장하게 됨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부모님과 어머니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로 점차 확대되며, 더불어 가까운 친척들과 이웃들에 대한 사연들까지 담겨진다. 그러므로 대부분 에피소드의 출발점은 ‘아버지’에 관한 기억에서 비롯되며,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사부곡(思父曲)이라고도 부를 만하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이야기는 군에서 배운 의료기술을 활용해 동네에서 의사로 활동하던 시절에 대한 얘기가 될 것이다. 즉, 아버지가 군대시절에 의무병으로 활동하면서 어머니를 만나게 된 얘기에서부터 제대 후 시골에 자리를 잡은 후 다친 이들을 치료해주며 생계를 꾸려가던 이야기, 무면허에 대한 신고로 인해 더 이상 의료행위를 하지 않게 된 얘기나 정식으로 의학을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 등 아버지에 대한 기억 가운데 상당부분이 의료 행위와 연관되어 있다. 또한,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게 된 후 생계를 위해 뛰어든 사업이 실패로 마무리되고, 그 후 가족 모두가 서울로 이주하게 되는 흐름 역시 가족사에 대한 기록에서 아버지와 그의 의료행위가 중요한 부분이었음을 증명해 보인다.

 

 


 

 

이처럼 아버지와 그의 의료행위가 이야기의 핵심을 구성하는 가운데 우리는 그것이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회고와도 이어진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요컨대, 1960,70년대 인구 만 명이 넘는 면소재지라 하더라도 변변한 의료시설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군대에서 군의관 어깨 너머로 배운 솜씨일망정 아버지의 손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언제나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목격할 수 있다. 덕분에 기술이 뛰어났던 아버지는 동리에서 실력 좋은 의사로 통했지만, 결국 경쟁자인 읍내 약방 주인의 신고로부터 ‘불법’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점 역시 가난으로 인해 제대로 학업의 기회를 갖지 못한 그 시대 아버지들의 불행을 반영해 보인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만주에서 일군 살림살이를 모두 버려두고 귀국하지만 않았더라도, 혹은 귀국길에 할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아서 이후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수만 있었더라도 아버지의 최종 학력이 일제강점기의 초등학교 3학년에서 멈추지는 않았을 것이다.

 

 


 

‘태정태세문단세’로 시작되는 스물일곱 명의 왕들을 기억함으로써 손쉽게 조선시대 5백년의 역사가 완성되는 것처럼 흑백사진으로도 남지 못한 시간들은 대체로 ‘역사적’인 인물들에 의해 기억되고는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것이 비록 ‘역사적’이지는 않을지라도 개개인의 사연들이 모여 백년의 역사를 구성해낸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을 듯하다. 작품 곳곳에 숨어있는 숱한 역정(歷程)들은 그저 어느 한 가족에 국한되고 제한된 사담(私談)이 아니라 고단한 시대를 함께 경험했던 우리 모두의 기억으로 공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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