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리뷰
작성일 2018.01.05 조회수 115

이토록 현실적이고 다정한 세계

이와모토 나오의 <금의나라 물의 나라>

 

김상희(만화평론가) 

 

 


 

사람들은 로맨스를 좋아한다. 서로 다른 기질과 환경이 주는 갈등을 극복하고 사랑과 화해로 온 가족이 대동단결하는 이야기에 감동받지 않을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 순간, 순애보가 시작된다. 이와모토 나오의금의 나라 물의 나라에서 주인공인 사라와 나란바야르가 사랑에 빠진 것도 선하고 순수한 성격 속에서 빛나는 의지라는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사랑하는 이의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아무리 외나무다리에 만난 철천지원수 같은 나라 출신이나 통통한 외모, 가난한 집안의 백수 따위는 문제되지 않는다. 순수한 연인들의 눈에는 오로지 달콤하고 다정한 세계로 향하는 길만 보일 뿐이다. 

 

일본 만화가 이와모토 나오의 작품을 살펴보면 착한 성품의 인물들이 어떻게 갈등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국내에 발간된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동네에서 소문난 텐구의 아이도 모난데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특히 작가의 전작이자 제55회 쇼가쿠칸 만화상을 수상한동네에서 소문난 텐구의 아이는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인 학원물인 동시에 텐구라는 일본의 전통 신화 속 상상의 동물과 사랑스러운 권속 동물들이 등장하는 코믹 판타지다. 텐구의 후예라는 운명과 평범한 인간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고생 아키히메와 동급생 슈운은 대학진학을 비롯한 미래와 성장을 고민하는 십대의 모습과 다름이 없다. 그럼에도 작가 특유의 코미디가 주는 유쾌함이 현실과 신화가 공존하는 낯선 텐구의 동네로 독자를 부담 없이 초대한다.

금의 나라 물의 나라도 선하고 강인한 의지를 가진 사라와 나란바야르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A나라와 B나라로 상징되는 이웃과의 오해와 갈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물은 부족하지만 훌륭한 인적자원 덕분에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을 이용해서 부를 축적한 A나라에게 B나라는 그저 쓸모없는 황무지일 뿐이다. 천연자원은 풍부하지만 안일한 지도자와 부패한 관리들 때문에 가난에 허덕이는 B나라는 A나라가 눈엣가시이다. 두 나라의 유치하지만 처절한 전쟁을 보다 못한 신은 두 나라의 왕에게 각자의 현명하고 아름다운 자식들을 결혼시켜 화해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B나라와 가까운 먼 변경에 사는 후궁의 딸과 A나라와 가까운 곳에 사는 가난한 학자의 아들은 각자의 배필이라고 만난 평화의 상징인 공주와 사위가 강아지와 고양이임을 알게 된다.

 

 

 

 

사라와 나란바야르는 로맨틱코미디의 선남선녀 주인공이라 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사라는 통통한 외모와 둥글둥글한 성격 때문에 부왕이나 정적에게 미움을 산 적도 없고 화려한 언니들에게 경계를 피하며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변경에 살고 있다. 나란바야르도 똑똑하고 야심도 있지만 가난한 학자 아버지와 먹여 살릴 형제들이 수두룩한 실업자다. 매력적이지 않는 외모에 백마 탄 왕자님의 환상을 이뤄주지 못하는 남녀 주인공의 설정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어떤 로맨스를 풀어낼지 집중하게 만든다. 이런 연출은 이와모토 나오 작가의 주특기로써, 개성적인 인물묘사로 현실적인 공감과 함께 코믹한 웃음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한 바 있다. 

 

금의 나라 물의 나라를 이끄는 스토리나 배경설정은 로맨스 판타지임이 분명하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원수 가문의 금지된 사랑과 더불어 황금으로 상징되는 풍부한 인적자원의 A나라가 화려하고 과학기술이 발달한 중세 아라비아 이슬람 시대의 분위기를 풍긴다. 가난하고 기술력은 모자라지만 물과 녹음이 넘치는 B나라도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부족을 연상시킨다. 이국적인 풍경의 낯선 사람들 사이에 선 사라와 나란바야르가 그랬던 것처럼 독자들도 처음에는 생경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한순간 즐거운 사람보다 널 소중히 대해주는 사람을 찾거라라며 진심 아닌 진심을 내비치는 현명한 나란바야르처럼 독자 또한 잠시 잊고 있던 진리 아닌 진리를 마주한다. A나라와 B나라도 동서고금을 통틀어 공통된 비극적인 인간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적자원이 풍부하고 다양한 과학기술이 발달한 덕에 A나라는 부유하다. 그러나상업 발달로 이미 인구는 포화 상태고 생명줄인 오아이스도 100년 전에 비해 1/3로 줄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80년 후에는 백악의 궁전은 폐허가 될 것이라며 앞날이 암울하기만 하다. B나라도 마찬가지다. A나라와의 전쟁으로 인해장기간 상업 루트를 봉쇄당해 비축분도 얼마 없고 지난 전쟁으로 국력도 이미 바닥난 상태이다. 권력다툼이 끊이지 않는 정부의 부패로 인해 백성들은 늘 굶주리고 있는 불안하고 비합리적인 작금의 현실이 떠오른다.

 

이러한 현실적인 사회를 묘사함으로써 사라와 나란바야르의 성격은 더욱 고결하고 순수하게 드러난다. 오로지 돈과 권력을 무기로 전쟁을 일으키며 무고한 사람들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불합리한 세상은 현재 우리가 견뎌야하는 부조리한 삶과 맞닿아있다. 작가는 착하고 순수한 사라와 강한 의지를 가진 나란바야르를 통해서 비극적인 세상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그리고 있다. 사라와 나란바야르가 갈등과 고난을 마주하고 견디며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감동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뿐만 아니라금의나라 물의나라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작가 특유의 개그감성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동네에서 소문난 텐구의 아이에서도 잘 드러나는 데 심각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기는 여유와 말투가 독자의 긴장을 내려놓고 재미를 느끼게 한다.

엉겁결에 우연히 사라의 남편 노릇을 해야 하는 나란바야르가할머님의 음식 맛을 떠올리면 아무렇지 않다며 걱정하는 사라에게 말하자, “나도 마음이 답답할 땐 16종 허브가 들어간 칠면조를 떠올린다며 사라가 대답한다. 어리석은 부왕 라스타반과 간신 피리팟파의 정적, 사라의 맏언니인 레오포르디네와 언니들의 정부, 사라딘의 코믹한 관계도 유쾌하다. 특히 퀸팰리스48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궁녀들이 왕궁을 점령한 군인들을 제압하는 장면에서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웃음이 나온다. 이와모토 나오의 독보적인 개성 중 하나인 독특하고 예측불허의 아이디어는 순정만화의 신파적 갈등이나 상투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벗어나서 좀 더 새롭고 재미있는 만화의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지난해는 말 그대로 다사다난한 해였다. 고통스럽고 힘겨운 시기가 있었던 만큼 밝고 새로운 가능성을 엿본 순간들도 많았다. 그만큼 새로운 희망은 끈덕지게 우리의 뒷덜미를 붙잡고 절망의 구렁텅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치게 만든다. ‘금의나라 물의나라는 그런 희망이 결코 헛되거나 소모적인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연료임을 보여준다. 포기하지 않고 느리지만 한걸음씩 나아간다면 아름다운 사랑도, 살기 좋은 세상도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2018년을 여는 지금, 이보다 더 어울리는 만화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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