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리뷰
작성일 2017.12.19 조회수 233

<불편하게 행복하게>

목가적인 시골살이에 대한 진실

 

김성훈(만화평론가)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삶의 여유를 찾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들이 최근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수년째 방송되고 있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비롯해 <여행생활자 집시맨>, <자연산다>, <섬으로 가자> 등등 자연 속에서 힐링하는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자연 속 삶’이 일종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한편으로 40,50대 조기퇴직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업무와 인간관계에 지친 이들의 자연을 찾고 싶은 염원이 매스컴을 통해 반영되고 있는 듯하다. 헌데, 자연이 정말 누구에게나 ‘환상의 파라다이스’를 제공해주는 것일까. 혹은 자연을 찾아 떠난 이들은 다들 여유로움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불편하게 행복하게>는 그런 궁금증에 적당한 답을 보여준다.

 

  

 

일단은 ‘불편하게’

 

이야기는 갖가지 ‘소리’들과 함께 시작된다. 주인공의 졸음을 깨우는 전화벨 소리에 이어 주인공이 살고 있는 건물 앞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수많은 자동차 소음들이 고스란히 독자들의 눈을 통해 들려온다. 피하고 싶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소리들이기도 하다. 그렇게 컷을 가득 메운 소리들은 보기만 해도 메스꺼울 지경이다. 거기에 만화가라는 주인공의 처지는 아침부터 담담편집자로부터 원고독촉을 받게 만들고, 이사 갈 집을 언제 보러 가냐는 아내의 독촉까지 더해져 작품은 출발부터 몹시 피곤함을 던져준다. 만화가, 도시의 소음, 그리고 거주만기일이 다가오는 집! 이제 주인공이 도시를 떠나고 싶은, 혹은 도시를 떠나도 되는 타당성이 맞춤형으로 제시된 셈이다.

 

 

 

 

다만 가지고 있는 돈이 뻔하니 그림책에 등장할만한 보기 좋고 갖출 것 다 갖춘 전원주택으로 이사 갈 처지는 되지 못한다. 그러니 인터넷 부동산에 올라온 수많은 매물들은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어서, 고르고 골라 선택된 곳은 포천의 어느 산자락 아래 위치한 외딴 집이다. 일단 교통상황이 열악하다. 서울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우선 외곽으로 가야 하는데 배차 간격이 한 시간이다. ,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까지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시골길을 달려간 후, 다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게다가 집 안에서는 전파가 잘 잡히지 않아 핸드폰으로 통화하려면 마당으로 나와야 할 정도니, ‘오지’라 해도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집을 보러 가는 길에 만난 공기는 너무 신선하였고, 집 앞에 흐르는 맑은 계곡물 역시 일상을 벗어난 판타지는 제공해 보인다. 게다가 산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은 집의 모양새가 도시생활에 힘겨웠던 주인공에게 편안한 안식을 줄 듯하다. 그리하여 부부는 그곳에 자신들의 새로운 둥지를 마련한다.

 

허나 정작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타고 약간의 도보까지 더해야 서울을 오갈 수 있는 불편함은 어쩌다 한번이니 적당히 참을 수 있겠다. 그러나 매일 밤 어둠이 찾아왔을 때 하늘 아래 두 사람밖에 없는 곳에서 느끼게 되는 적막함이야말로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기분으로 묘사된다. 그것은 두려움도 혹은 공포 등과 같이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감정이 아닌 듯하다. 거기에 더해 주말이면 입산금지 구역임에도 버젓이 차를 끌고 올라와 주인공 살고 있는 앞마당에 주차를 하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심과 적개심마저 자리 잡는다. 어쩌면 도시에서 계속 살았다면 없었을 감정들이다. 그렇게 주인공은 떨떠름한 기분을 떨칠 수 없지만 “이곳에 이사 온 게 너무너무 좋다”라는 아내의 말에 쉽게 어깃장을 놓지는 못한다.

 

 

 

 

한편, 조용한 주변 환경과 달리 주인공은 뭔가 해야 할 일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하루 지나면 무섭게 자라나는 앞마당의 풀도 베어내어야 하고, 밥 먹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벌레도 잡아야 한다. 겨울로 접어들자 한 달에 수십만 원을 먹어치우는 기름보일러가 감당이 안 되어 연탄난로를 설치하기도 하며, 난롯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새벽잠을 깨워 연탄을 갈기도 한다. 난방을 하지 않은 큰방에는 곰팡이가 점점 늘어나고, 기름 아낀다고 모터를 잠시 꺼놨더니 수도관이 얼어 터져서 계곡물을 받아오기도 한다. 어쩌면 보통의 시골살이란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조용한 곳에서 창작에 전념하기 위해 시골로 들어온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이사 온 후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신경 쓸 일이 곱절로 늘어난 셈이다. 힐링은 없고 지독한 일상만 계속된다.

 

그리고 ‘행복하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골살이에서도 계속되는 가난이다. 주인공은 문하생 시절을 경험한 데뷔 14년차 만화가이자, 동시에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휴학생 신세다. 그의 아내 역시 아직 벌이가 없는 작가 지망생이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은 공기 좋은 곳에서도 여전히 마감에 쫓기고 있으며, 집 옆에 계곡물은 흐르지만 수정작업에 시달리고 있다. 일상으로 계속되고 스트레스는 여전하다. 빈약한 원고료 또한 그대로라서 각종 공과금과 밀린 세금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 역시 변함이 없다. 그러니 실상 도시의 삶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급기야 밀린 사용료로 인해 핸드폰과 집 전화마저 끊기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헌데, 주인공이 과거의 여자친구, 즉 지금은 아내가 된 그녀와의 연애시절을 떠올리는 모습을 보다보면 주인공이 처한 힘겨움은 그저 이름 없는 만화가의 서글픈 일상이 아니다. 또한 시골살이 1년차가 겪는 어설픈 곤란함에 관한 탄식이라고 느끼기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보인다. , 주인공은 매일매일 힘들게 노동을 생산한다. 열심히 그리고 또한 수정을 거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주로 진행되는 컬러 및 데생비용을 지불하고 나면 손에 쥐게 되는 것은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다. 휴학기간 동안 학비를 벌어두고 복학 후에는 학업에 매진할 계획이었으나, 저축은 요원하다. 끝이 없는 빈곤의 악순환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이룬 가정에 대해 경제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가장으로서의 서글픔과 공부에 매진하고 싶어도 돈이 허락지 않는 늦깎이 대학생의 모습들은 모두 우리 세대 청춘들의 힘겨운 현실과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안팎으로 힘든 주인공의 심정은 종종 ‘분신술’을 통해 묘사된다. 가령, 실제 주인공은 책상 앞에 앉아 원고에 매진하고 있지만, 마당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또 하나의 주인공 모습으로 표현해 보인다. 혹은 복잡한 심경의 주인공 처지를 여러 명의 모습으로 등장시키기도 하는데, 그것은 흡사 정신분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주인공에게 변화의 징조는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더 이상 내몰릴 수 없을 만큼 내몰린 그는 “한 달 동안 7kg이 빠질 정도”로 깊은 몸살을 앓는다. 몸무게가 빠진 만큼 마음도 가벼워진 것일까. 징글징글하게 여기던 겨울에 대해서는 ‘차갑고 신선한 공기’를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바뀌었고, ‘봄가을에 가지마다 리본이나 묶어놓고 가는 산악회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계절이라 여기며 그 한적함마저 누릴 수 있는 여유도 가지게 되었다. 주인공의 바뀐 관점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조금씩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한 것이다.

 

 

 

 

겨울이 설상가상이었다면, 이제 주인공에게 봄은 금상첨화다. 텃밭을 일구어 스스로 먹거리를 마련하게 되었고, 지독히도 그를 괴롭히던 원고도 끝내고 본인이 정말 하고 싶던 작품에 매진할 수 있게 된다. 가난은 여전하지만, 주변으로부터 돈을 구해 학교도 다시 다니게 되었다. 거기에 아내가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어깨도 가벼워진 듯 보인다. 시간이 더 흘러 두 번째 겨울을 맞이할 때에는 익숙해진 시골살이로 인해 주인공의 마음에도 비로소 평온함이 찾아온 듯하다. 그러니 만일 당신이 여유로운 일상을 찾아 시골로 가기를 원한다면, 부디 <불편하게 행복하게>를 정독해보기를 권한다. 미리 경험한 이의 득과 실을 인고의 시간 없이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니, 만일 이 작품에 등장하는 ‘불편’ 정도 쯤은 능히 감수할 자신이 있다면 분명 당신은 ‘행복’ 또한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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