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리뷰
작성일 2017.12.05 조회수 46

숨비소리

그 여자의 특별한 일상

 

김성훈(만화평론가)

 

‘숨비소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물 밖으로 올라와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로 풀이된다. 가쁜 숨소리야 백 미터 달리기에서 결승점을 통과할 때도 나오기 마련이지만, 해녀들이 물질할 때 나는 소리라고 해서 따로 명명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일단 해녀들의 물질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납덩이를 몸에 두르고 바다 밑으로 내려간 후 최장 몇 분 동안 호흡과 수압을 견뎌내야 하는 그 고통에 대해 누군가는 “죽으러 들어가고 살아 나온다”(조한별, <여성중앙> 2017 1월호 기사 ‘해녀의 숨비소리’(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2011&contents_id=129814)에서 인용하였다.)고 얘기했으니, 체험하지 않은 이들에게 그것을 명확히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한껏 참았다가 해수면 위로 나오자마자 내뱉게 되는 숨은 분명 생사를 넘나드는 것일지니, 어쩌면 그 어떤 힘겨운 숨소리에도 비길 수 없기에 따로 이름이 붙여진 것은 아닐까 싶다. <숨비소리>에 담긴 주인공의 시간 또한 그렇게 숨이 가빠 보인다.

 

 

  

 

일상을 파괴하는 일상성

 

처음에는 그저 약간 힘겨워보였다. 작품의 주인공은 평범한 30대 여성, 그녀의 이름은 ‘한경복’이다. 어리지 않은 나이에 빵집에서 - 정규직이 아닌 알바로 - 일하고 있는 여자, 그러니까 나이와 직업을 보자면 ‘흙수저’쯤 되겠다. 하지만, 취업이 힘겨운 요즘 세태에 그 정도 프로필이 한탄스러울 것은 아니다. 다만, 재개발을 앞둔 동네의 어느 집 이층에서 보증금 500만 원에 35만 원의 월세를 내며 살고 있다는 그녀의 현실에 관한 소개가 이어지게 되면 앞에서 나열된 프로필과 더해져 “실패한 인생인 건가?”라며 스스로 신세를 한탄할 수도 있음에 동의를 보내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손님 앞에서 기꺼이 “또 오세요”라며 미소를 보낼 수 있는 직업적 성실함은 지니고 있다. 비록 꼰대 같은 손님이 그녀의 인사에 “그 나이 먹고 이런 데서 알바나 하고”라며 혀를 차더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그럭저럭이다. 사지 멀쩡해, 몸 누울 곳과 일할 곳도 있으니 ‘미래’까지는 생각하지 말고 현재만 긍정적으로 보자면 나쁘지 않다. 다만, 그녀의 사연에 어머니의 현실이 더해지면 이제 ‘긍정’을 긍정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녀의 엄마, 김수심 여사. 스무 살에 결혼했고, 막내 딸 경복의 나이가 서른이니 아직 환갑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곧 그녀 나이 50대라는 이야기와 맞닿는다. 바꾸어 말하면 백세시대라는 요즘에 건강관리만 잘하면 ‘청춘’이라는 단어도 부끄럽지 않은 나이이기도 하다. 문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즉 경복의 엄마는 우울증에 걸려 있으며, 그런 엄마와 함께 살기 위해 경복은 그동안 함께 살았던 룸메이트에게 이별까지 고했다. 엄마를 모셔온 첫날부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염려와 “어떻게 되겠지”라는 체념이 교차하는 것은 엄마의 상태가 염려되는 딸로서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 팍팍한 모녀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일단 딸의 자세에 우리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부모 자식 간에도 셈의 논리가 분명한 요즘 세태 속에서 아픈 엄마와 함께 살기로 마음먹은 그녀는 분명 효녀이며, 그러한 마음은 이유를 막론하고 칭찬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헌데, 칭찬은 순간이며 일상은 계속된다. 일상은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으며 내일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곧 가진 것 없는 이가 어제와 오늘처럼 내일도 고달픈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는 사실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런 측면에서 ‘월세살이 경복이는 우울증 걸린 엄마와 함께 살게 됩니다’라는 설정은 오늘보다 더 힘겨운 내일이 약속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러한 힘겨움의 출발은 대체 어디일까. 작품은 그 점에 대해 엄마의 기억을 소환시켜 설명해 보인다. , 스무 살 나이에 결혼한 그녀는 남편을 따라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했고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시어머니의 욕심에 세 명의 딸로 답하면서 평탄치 않은 젊은 시절을 보냈다. 술로 세월을 보내는 남편은 술버릇 또한 고약하여 그녀에게 패악을 부리고 일쑤였고, 그로 인해 이제 남편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우울증에 대한 합당한 원인을 증명해보이고 있다. 그렇게 과거는 오늘로 이어지고 있으며, 미래마저 예측하게 한다. 하루하루가 쉽지 않다.

 

여자라는 이름의 무게

 

엄마가 우울증이라면, 그런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딸은 어떨까. 매일 같은 아빠의 술주정과 그런 아빠의 폭력성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있던 엄마라는 존재가 고스란히 경복의 유년시절과 동의어가 되는 셈이다. , 어린 시절 부모와 화목했던 기억이 별로 없는 그녀에게 남편으로부터 주먹질을 당해야 했던 기억을 지닌 엄마와 함께 사는 현재는 과거라는 시간의 연장이다. 우울증으로 인해 예상할 수 없는 엄마의 행동반경은 하루에도 몇 번씩 딸의 마음을 졸이게 한다. 그렇게 평범하지 않는 엄마의 상태는 딸의 현재마저 불행으로 이끈다. 그러니까 최악 중의 최악은 그러한 불행이 단막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속극’이라는 사실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엄마에 관한 불안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즉 그녀에게는 두 명의 언니가 있으며, 이모와 외삼촌도 있다. 누군가 그랬지 않은가.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지만, ‘경계성 지능’에서 치매와 줄다리기 하고 있는 엄마의 일상을 바로 곁에서 체험하고 있는 경복이의 고통을 사실상 형제, 친척이라고 하더라도 모두 알 수는 없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일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혼자 살기를 원하는 둘째 언니는 그렇다 하더라도,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는 큰 언니에게도 ‘엄마와의 일상이 선사하는 매일의 위기감’을 공유하기는 쉽지 않다. 어릴 때 ‘죽일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을 만큼 지긋지긋하게 여기던 아버지와 살고 있는 큰 언니는 어쩌면 경복이보다 더욱 힘겨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늬들 엄마는 늬들이 쥐어패든 어쩌든 알아서 해야 될 거 아니냐”라고 얘기하는 외삼촌에 대해서는 경복이가 “이런~ !”이라고 응어리를 풀었을 정도니 친척이라고 해봐야 어째 이웃보다 못한 듯하다. 엄마의 상태에 대해 “기도로 마귀를 쫓아내야 돼”라며 얘기할지언정 반년 동안 함께 살았던 이모는 그나마 나은 셈이다.

 


  

그렇다면 남자친구는 어떨까. 남자친구의 이름은 고정신. “처음으로 모든 걸 의지하고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할 만큼 피곤하고 힘겨운 그녀의 시간 속에 안식처가 되었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랬던 그도 최근 들어 어쩐지 그녀에게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고 있는 듯하다. “나니까 만나주는 거지”라고 대놓고 ‘부심’을 부리는 그에게는 사랑과 애정의 유효기간이 만료된 듯 느낌이다. 물론 6년이라는 연애기간이 두 사람 사이에 ‘사랑보다 의리’가 자리 잡게 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기댈 데 없는 경복이에게 주어진 마지막 안식처로서는 심히 불안해 보인다. 경복이는 그런 그와 일생을 약속해도 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스무 살에 팔려가듯 결혼을 해야 했던 엄마의 젊은 시절과 우울증에 걸린 엄마를 돌보고 있는 경복의 서른 살은 어쩐지 많이 닮아 있다. 다만, ‘딸은 엄마를 닮는다’라는 식의 근거 없는 인과관계로 경복의 미래마저 재단하기엔 경복의 서른 살이 너무 억울해 보인다. 그러니 그녀가 짜증스럽던 빵집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찾게 된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새로 찾은 일이 자신이 좋아했던 만화와 연관된다는 점은 더욱 긍정적일 것이다. 물론 다시 들어간 회사에서도 억울한 일상은 거듭되긴 하지만 어찌 한 번에 모든 것이 술술 풀릴 수야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효녀 경복이’에게 박수를 보냈듯이, 힘겨운 현실에 굴하지 않고 굳건히 일어서는 그녀의 모습에도 응원을 보내야 할 것이다. 설령 다음 순간 다시 쓰러지더라도 또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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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2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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