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리뷰
작성일 2017.11.21 조회수 104

당신의 신은 안녕하십니까-주호민의<신과 함께>

 

서은영(만화포럼위원)

 

영웅은 박제가 되어...

 

1976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로보트 태권 V>의 훈이는 태권브이를 몰던 국가적 영웅이었다. 그에게는 붉은 별 악당을 물리쳐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와 사명이 놓여있었고, 그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가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의 목표를 방해하는 것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면 되었고, 적에게는 일말의 동정심도 필요치 않았다. 붉은별 군단의 카프 박사는 국제회의 연단에서 넘어지면서 망신을 당했고, 외모 콤플렉스가 있던 그는 이를 계기로 악당이 되기로 결심한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세계를 위험에 빠뜨린 카프 박사는 응당 사라져야할 악당임이 분명해 보였다.

 

 

웹툰 브이

 

그러나 30년이 지난 후 웹툰 <브이>에서는 지난 날 그렇게도 명징해 보였던 선악의 구분도 모호해졌고, 훈이는 더 이상 영웅이 되기를 주저한다. 그리고 카프 박사에겐 동정할 만한 비극적 사연이 생겼다. 30년이 지난 지금, “착하게 살아라”고만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우리는 30년 전 훈이가 믿었던 세계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로보트 태권V에게 명징하게 주어졌던 목표는 의심스럽기 짝이 없고, 세계는 개인을 각자도생의 덫으로 처넣어 버렸다.

 

애당초 불가능한 정의

 

<신과함께-저승편>의 김자홍은 이렇다할 특색 없이 살아왔다. 생전 그의 삶을 서술하라는 변호사 진기한의 말에 그가 쓴 인생은 겨우 세 장이었다. “딱히 기억나는 착한 일도 나쁜 일도 없는, 굴곡이라곤 없는” 김자홍의 인생은 분명한 목표도 없어 보인다. 젊은 나이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담담하다. 그에게 삶이란 무엇이었을까.

<신과함께-이승편>의 대학생 박성호는 비싼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철거 용역에 뛰어든다. 처음에 들었던 무거웠던 죄책감도 등록금을 생각하면 어느새 용기로 바뀐다. 그렇게 그는 젊은 나이에 뜻하지 않게 ‘업’을 쌓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을 이른 나이부터 지어버린 박성호는 아마도 죽음 후 저승의 심판이 김자홍의 여정보다 훨씬 힘들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박성호의 업은 자신의 꼬리를 물며 영원한 속박 속으로 빠져버린 뱀으로 형상화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박성호의 선택을 마냥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2007년 작인 웹툰 <브이>의 이야기는 동료의 자살로부터 시작한다. 명퇴한 상사의 자리는 승진할 기회일 뿐이고, 실적과 명퇴의 압박에 견디다 못한 동료가 자살한 자리는 애도의 시간도 없이 말끔히 지워진다. 중년의 훈이는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유령”처럼 이 도시를 배회할 뿐이다. 더 이상 조작된 신화에 꼭두각시처럼 살고 싶지 않던 훈이는 모두가 동경하는 영웅의 삶을 폐기시켜버렸지만, 그렇다고 딱히 주체적인 삶을 살지도 못한다.

김자홍과 훈이, 그리고 박성호.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납작 엎드렸다. 부당하게 이어지는 실적 압박과 명퇴에 맞설 용기가 부족하니 술로 회한을 풀 뿐이다.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서열화된 세상에서 첫 발부터 삐그덕 거릴 건 뻔하다. 납품 업체의 단가를 후려쳐 고혈을 쥐어 짜 낸 것 역시 죄다. “무골호인”이라지만, 부당함을 외면했으니 죄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죄를 물을 수도 없다.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정의롭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Thanks to god

 

다행히 신도 그것을 알고 계신 듯 하다. <신과 함께-저승편>의 진기한은 김자홍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것도 편법으로!. 진기한은 할락궁이의 서천 꽃 밭에 몰래 숨어들어 피살이꽃을 훔쳐오고, 삼도천의 독사 기름을 발라 공격을 피해간다. 위법이나 불법은 아니지만 위험 상황에 맞서기 위해 편법 정도는 허용해주는 신의 세계는 왠지 안도감을 준다. 정의롭지 못한 세계에서 정의만 외칠 수도, 그렇다고 두 눈 질끈 감기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많은 독자에게 신의 편법을 마치 당신의 고단함과 그 끝에 결단한 선택을 이해한다는 위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올해로 IMF 20년이 되었다. 기념할 만한 일은 아니라 무척 씁쓸하지만, IMF 이후 우리네 삶은 적잖은 변화를 겪었다. 감히 상상해볼 수 없었던 국가부도 사태는 대량해고와 실직의 공포로 대한민국 전체를 뒤덮었고, 이는 곧 가족의 해체와 개인의 삶의 붕괴로 이어졌다. IMF라는 역사적 사건 이후 국가의 부재 속에서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떠넘겨졌으며, 가족, 아니 나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선 ‘어떻게든살아남아야 한다는 명제가 숙명처럼 지워졌다.

 

아직 부양해야할 가족이 없던 대학생의 박성호도, 40살 미혼의 김자홍도, 그리고 가족을 지켜야만 했던 훈이의 삶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숙명을 무겁게 짊어진 우리들의 모습이기에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렇다고 업을 지으며 살지는 말자. 우리 주변에 유성연과 같은 원귀들이 가득찬 세상을 신도 원치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롭지 않은 세상에서 오늘도 당신의 신과 함께 하시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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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2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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