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리뷰
작성일 2017.09.20 조회수 279

미래를 빌려 현실을 비판하다

오영진의 <어덜트 파크>

 

김성훈(만화평론가)

 

 

 

 

2017년 현재 로봇의 발전은 사실상 사람의 힘을 필요로 하는 대부분 영역에서 활약 중인 것으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세밀함이 요구되거나 위험이 도사리는 산업현장은 물론 청소기나 자동차 자율주행 등을 통해 일상 속에서도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외형에 있어서는 여전히 사람의 모습과 판이하게 달라 SF 영화 속에 나오는 안드로이드 형태의 로봇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능형 로봇까지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로봇과의 감정적 교류도 가능할 것이라는 상상이 결코 허튼 소리만은 아닌 듯하다. <어덜트 파크>는 그와 같은 상상이 현실이 되는 세상을 담고 있다.

 

어른들의 현실

 

이 작품은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을 통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에 대해 구체적으로 전달해보이고 있다. 일단 주인공용배는 전지회사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봉급쟁이다. 함께 입사한 동기들이 새로운 터전을 찾아 이직하는 동안 그는 묵묵히 회사를 지켰으나 이제는 밀리고 밀려 퇴사를 걱정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런 그에게 회사 후배인동철은 머리라도 식히라며 지방 호텔의 무료숙박권을 내민다. 심란한 마음에 즐겁게 여행이나 다닐 처지는 아니지만 들뜬 아내의 음성에 주인공은 자의반 타의반 여행길에 오른다. 그렇듯 며칠간의 짧은 휴가마저도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없는 40대 직장인의 모습 속에 현재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많은 가장들의 모습이 투영된다.

 

한편, 주인공의 대학동아리 후배강모는 오랫동안 사람들과 연락이 끊겼다가 얼마 전 변두리에 술집을 오픈한다는 소식을 주인공에게 전해왔다. 이에 개업을 축하하러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 선후배들이 함께 자리 했고, 사랑에 실패하고 폐인이 되었다가 재기하려는 강모의 모습에 다들 축하의 말을 꺼낸다. 하지만 개업축하 자리가 끝난 후 선배동수와 함께 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주인공은 강모가 신장을 팔아 생긴 돈으로 가게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동수가 신장매매에 일조했다는 사실에 주인공은 분개하지만, 강모가 어려울 때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던 그가 동수에게 입바른 소리만 꺼낼 입장은 아니다.

 

 

 

 

또 다른 이야기 축을 형성하는준호는 주인공과 입사동기지만 주인공보다 일찍 자신의 살길을 찾아 회사를 떠났던 인물이다. 새로운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아내의 죽음 이후 재혼까지 하면서 최근풀린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라고 해서 결코 쉬운 인생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젊은 나이에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아내가 5년 동안 병상에 누워있었고, 매일 퇴근 후면 그런 그녀 곁을 지켜야 했던 그의 시간들은 경험해보지 않는 이상 그 누구라도 이해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으리라. 그러니 코마상태에 빠진 아내에게 죽음을 예정하며지금 날 원망한다면 당신은 정말 나쁜 사람이야.”라고 항변하는 그의 입장은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가진다 하겠다. 정작 중요한 것은 준호 아내의 죽음에도 주인공의 선배인 동수가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작품은 이처럼 처지는 다르지만 고단하고 힘겨운 시간들을 마주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동질감을 지닌 세 명의 인물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러한 동질감은 각자가 선택한 해결방식에 따라 매우 이질적인 현실로 분화된다. , 폐인으로 살아야했던 원인과 재기에 대한 바탕이 모두 사랑하는 이에 대한 마음에서 비롯된 강모의 현실은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모습 그대로다. 이에 반해 식물인간이 된 아내의 뇌를 결국 매매하게 되는 준호의 현실은 고도의 과학문명이 가져올 디스토피아(dystopia)적 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 사이에서 조금씩 주류로부터 밀려나면서도 적당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현실에 안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해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이들이 보여주는 어른들의 삶과 현실이 총체적으로어덜트 파크일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테마파크

 

다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주인공은 동철이 건네준 무료숙박권을 가지고 목포로 향한다. 전날 강모의 개업축하 술자리가 늦게 끝난 탓에 여전히 남아있는 숙취를 덜어내기 위해 주인공은 휴게소에 들른다. 그러나 휴게소 화장실에서 마주한 장기매매 전단지로 인해 강모의 처지가 떠올라 휴게소를 나설 때도 주인공은 여전히 깔끔한 기분이 아니다.

 

 

 

 

그러다가 문득 전단지에 쓰인 매매장기 목록에가 있었다는 사실에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신장이나 간과 달리 뇌는여분이 불가능한 품목이 아니던가. 술이 덜 깬 주인공의 뇌리 속에서 이처럼 이야기는 슬며시복선을 던져 놓은 채 다시 목포로 향한다.

 

물어물어 도착한 목포의 변두리 호텔. 호텔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초라한 숙소에 대해 실망한 것도 잠시, 주인공 부부는 배를 타고 인근 섬에 가보고자 했던 일정마저 갑자기 퍼부어대는 비로 인해 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마주한다. 산다는 것이 뜻하는 대로 혹은 계획한 바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기에 특히 여행지에서의 일정 변경은 누구나 한번쯤은 마주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대체 일정을 찾던 주인공은 예정에 없던 곳을 방문하게 되니 그곳이어덜트 파크가 되겠다. 숙소에서 쉬겠다는 아내를 두고 주인공 혼자어덜트 파크에 들리는데,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19콘텐츠가 마련된 공간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사장이 자신 있게 추천하는 것은대화가 가능한 로봇이다.

 

‘19이라고 하면 흔히 음담패설을 떠올리겠지만, ‘어덜트 파크에서 제공되는 로봇들은 좀 더 고차원적이며 조금 더 지적이다. 즉 이곳에서 등장하는 로봇들은 손님들에게 대화의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요컨대 손님들이 얘기하는 인생의 희노애락에 대해 교감할 수 있는 로봇들이며, 그 덕분에 이들과의 시간을 즐기기 위한 단골들까지 생겨났다고 사장은 열변을 토한다. 호기심이 생긴 주인공은 어덜트 파크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로봇요기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사장의 얘기처럼 요기는 대화의 흐름을 파악하여 상대방에게 묘한 편안함을 선사한다. 마치 살아있는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말이다.

 


 

헌데 어쩐 일인지 요기의 입에서 주인공의 입사동기인준호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주인공이 준호를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질문해보지만, 요기는 영업상 얘기할 수 없다고만 답한다. 그 대신 요기는 매우 사적인 메시지를 준호에게 전달해달라고 주인공에게 부탁한다. 그렇게 대화의 시간이 끝나고, 의문을 가진 채 목포에서 서울로 복귀한 주인공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무료숙박권을 주었던 회사후배 동철은 주인공이 휴가를 간 사이에 퇴사를 했고, 술집을 잘 운영해나가고 있을 줄 알았던 강모는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동철은 준호의 회사로 이직했고, 동수에게사랑했던 여인을 위해서라면 심장이라도 팔 수 있다는 얘기를 건넨 강모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의 통장에 거금을 남긴다.

 

 

비록 한국산은 아닐지라도, 아톰이나 건담과 같은 로봇들은 어린 시절 우리들에게 큰 희망을 선사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정의, 인정, 배려, 용기, 모험 등과 같은 개념을 학교에서 배우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면, 분명 이들 로봇들이 보여주는 세계관을 통해 학습된 것이리라. 다만 그렇게 로봇을 통해 지금보다 더욱 아름답고 인간다운 미래를 꿈꾸었을 대부분의 아이들이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었을 때 더 이상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실만 보게 되었다고 한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어덜트에게 있는 부여된 취직, 월급, 이직 등과 같은 현실들이 다른 가치들로 치환되지 않은 이상어덜트 파크가 바뀔 리가 없다는 것은 더욱 슬픈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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