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리뷰
작성일 2017.08.30 조회수 234

한국형 좀비 이야기

이경석 <좀비의 시간>

 

김성훈(만화평론가)

 

 

 

 

오빠와 여동생 그리고 엄마와 아빠, 그렇게 일가족이 오랜만에 교외로 나들이를 왔다. 아빠는 낚싯대 앞에 앉아 물고기를 기다리는 중이며, 오랜만의 나들이건만 잠만 자고 있는 아들이 마땅치 않은 엄마는 딸과 함께 아들에 대한 뒷담화에 열중하고 있다. 그런 모녀의 재잘거림이 신경 쓰이는지떠들 거면 들어가서 자라는 아빠의 핀잔도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그런대로 괜찮은 혹은 어떻게 생각해 보면 꽤나 전형적인 느낌이 드는 우리네 가족 나들이의 표본인 셈이다. 헌데 이처럼 평범한 가족모임에 예상치 못한 상상력이 괴팍하게 개입되는 것은 채 한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일어난다. 텐트 안에서 평화롭게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아들이좀비에 물린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도 아니고 한국 만화에서 무려좀비라니! 다음 페이지를 서둘러 넘기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좀비, 그러나 좀비와는 다른

 

사실 한국만화에서 좀비의 등장이 다소 기괴한 일일지라도, 좀비 자체에 대해 특별한 거부감이 없다면 그것은 순전히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얻어진 좀비에 대한 익숙한 정보 때문일 것이다. 특히살아있는 시체로서 멀쩡한 인간들을 쫓아다니는 그들의 습성은 좀비를 알고 있는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들이 인간을 맹렬하게 쫓는 이유 또한물어뜯기위해서라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물어뜯긴 인간들은 거의 대부분 좀비가 되어 또 다른 멀쩡한 인간들을 쫓아다닌다. 그래서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는 대체로좀비에 대항하는 인간들의 투쟁기가 그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할리우드 영화에서 좀비들은 대부분 멀쩡한 인간들에 의해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등장한다. , 주인공은 좀비로부터 달아나야 하며, 인간들은 생존을 위해 좀비에게서 가능한 한 멀리 도망쳐야 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바꾸어 말하면, 할리우드 영화에서 좀비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과 대치해야 하는 입장으로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에 반해 <좀비의 시간>에서는 주인공이 곧 좀비다. 정확히 말하면, 첫 등장에서 좀비에게 물려 작품이 끝날 때까지 좀비로 살아가야 할 비극적인 운명을 지닌 이가 주인공인 셈이다. 평범한 인간이 좀비가 되어 이처럼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는 매우 희귀한 경우라 할 만하니, 결과적으로 주인공은 좀비에게 부여된 고정된 틀을 뒤집어놓는다.

 

 

 

 

주인공이 좀비에게 물린 설정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그로 인해 이어지는 이야기 또한 예측을 불허한다. 일단 좀비에게 물린 아들이 두려워 나 몰라라 도망치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여동생의 모습은피를 나눈 가족인데 너무 한다 싶기도 하지만, 이건 좀비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이라서 일정 부분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좀비에게 물리고서도 멀쩡한 아들, 즉 주인공의 모습이다. 도망친 가족들에 이어 집으로 돌아온 그는아들이 죽어가는데 자기들 살겠다고 도망쳐, 어떻게 그럴 수 있냐구!”라며 소리치며 억울해한다. 희한하게도 그는 좀비에게 물렸건만 아직 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당장에 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좀비에게 물린 그 자체는 주인공에게 있어 엄청난 불안감으로 자리 잡는다. 헌데 자신이 곧 좀비가 될 거라는 강박관념은 의외로 주인공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하게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 대학 졸업 후에도 취직을 하지 못해 백수로 지내면서담배 피는 고삐리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을 괴롭히던 동창생을 무서워하며 의기소침하게 지낸 것이 주인공의 원래 모습이라면, 좀비에게 물린 후 그는 담배 피는 고삐리를 향해 당당히빨랑 꺼라며 소리치거나 자신을 괴롭히던 동창생에게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도리어 괴롭힘을 선사한다. 보기에 따라 참으로 약소한 변모일 수도 있겠지만, ‘내일 당장 좀비가 될 수도 있다는 극한의 두려움이 작용하지 않았던들 주인공에게 이러한 변화가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바꾸어 말하면, 이러한 변화는 주인공이 평소에 꿈꿨던 일들을 성취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니, 버킷리스트를 지워가는좀비의 시간이 그리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하겠다.

 

반전 그리고 담론들

 

 

 

 

좀비에게 물린 후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있어서 변화의 최고점은 죽기 전에연애라는 것을 해보기 위해 처음 본 은행직원에게 고백하는 순간이라 할 것이다. 여전히 주인공은 좀비에 관한 일말의 징후도 보이지 않는 상태라서 지금의 그는 그저 처음 보는 여인한테 무작정 고백한또라이일 뿐이다. 헌데 어찌된 일인지 주인공으로부터 고백을 받은 여인 또한 감격해함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바로 연인모드로 돌입한다. 어안이 벙벙할 만큼 거듭되는 반전이지만, 여인의 정체가첫 결혼에 실패한 후 남자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던 캐릭터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극적 개연성은 확보된다. 그렇게 작품은 나약했던 한 인간이좀비라는 계기를 통해 전에 없던 용기로 또 다른 세상을 얻게 되는 모습을 그려나간다.

 

이처럼 작품 속에는 만화적 설정과 현실에 대한 풍자가 시시때때로 교차한다. 가령, 좀비에게 걸린 현상금을 노리고 주인공의 정체를 경찰에 알리려는 여고 일진들이 주인공 여동생의 핸드폰을 빼앗아 여동생 목소리를 흉내 내는 모습 속에는 친구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학원폭력의 모습이 슬쩍 들어가 있다. 또한 그 목소리에 속아 일진들에게 붙잡히는 주인공의 모습이 뭔가 어설픈 설정이라고 생각되다가도그건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대화가 전혀 없었던 탓이라는 여동생의 대사 하나로 사건 전개에 관한 설득력과 함께 교훈까지 전달하는 작가의 치밀한 계산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경찰이 생포한 좀비의 위를 분석해 감염된 인원이 30명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는 것과 이것이 인권문제로 확대되는 모습 또한남다른 좀비물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과정이라 하겠다. , 30명에 대해 경찰은 이른바피도 눈물도 있다작전을 펼치게 되는데, 이는 좀비의 실체를 시민들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이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제거되는 이들은 좀비에게 물렸어도 주인공처럼 여전히 멀쩡한 이들도 존재한다. 그러니까 그들은좀비에게 물렸다는 이유로 경찰과 맞닥뜨리자마자 총살당하게 되는 것이다. 때마침 어느 제보로 인해 좀비와 좀비에 대한 수사방식이 매스컴을 타게 된다. 덕분에 공개수배로 전환되어 예비좀비들에 관해 무분별한 살상 대신 격리 수감하는 조치로 바뀌지만, 이 또한 자신의 비리를물타기해보려는 권력자의 꼼수로 그려지면서 좀비라는 소재를 통해 복잡다양한 현실의 모습을 투영해보이고 있다.

 

 

 

 

 

캠핑 가자고 조르지만 않았어도아들이 공개수배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후회하는 엄마의 눈물과 형사라는 직업으로 인해 아들을 쫓아야 하는 아버지의 서글픈 입장이 가미되면서 이야기는 다시 가족의 문제로 회귀한다. 게다가 자신 때문에 함께 쫓기는 신세가 된 친구와 여인에게 미안함 마음이 든 주인공은 스스로 경찰에 잡힘으로써 사랑하는 이에 대한 희생 혹은 친구와의 의리 등과 같이 누구나 공감할만한 도덕적 가치관도 슬며시 화두로 던진다. 여전히 좀비에게 물린 주인공은 좀비가 되지 않고 있으니, 아마도 좀비한테 물렸으면서도 이처럼 오랫동안 인간 본연의 모습의 지킨 주인공은 일찍이 없었을 듯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 작품은좀비에게 물린 인간은 좀비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암묵적인 룰은 결코 거스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에게 부여된좀비의 시간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사수하기 위해 허락된 마지막 시간들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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