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리뷰
작성일 2017.03.31 조회수 281
우리 안의 불편함을 열어두는 순간 ? 2B, <퀴퀴한 일기>
 
서은영(만화포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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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섬네일
 
두툼한 턱살, 가슴보다 더 튀어나온 불룩한 배, 운동과는 무관한 근육 없는 팔다리, 손질이 귀찮아 반듯하게 자른 듯한 단발컷, 비키니를 입었지만 전혀 섹시해 보이지 않는 몸매, 반바지에 양말을 신은 패션센스. 그 중에 압권은 막돼먹은(?) 스타일에 화룡정점을 찍은 선글라스다. 그러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언발란스한 패션 감각으로 그녀의 일상이 퀴퀴할 것이라고 예단하면 안 된다. 패션센스는 꽝일지라도 일상을 포착해내는 센스와 은근한 유머 코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녀의 센스 있는 일상들을 들여다보면 오후 세 시의 나른함도 날려버린다. 이런 일상툰이 6년을 넘게 연재된다는 것도 독자 입장에서는 기쁜 일이다.
이보람 작가의 <퀴퀴한 일기>2009이라는 제목으로 네이버의 베스트 도전에서 출발했다. 단행본 출간과 교보 북뉴스에 <어쨌거나, 청춘> 연재와 더불어 2016년 다음 웹툰에서 정식 연재되고 있다. 크게 빵 터지는 유머는 아니지만, 소소하고 잔잔한 웃음으로 6년이라는 시간을 연재하면서도 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작가의 내공을 가히 짐작케 한다. 그 사이에 그녀는 이보람이라는 실명 대신 미쓰리에서 뽀람, 민요작가, 2B, 이냐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닉네임도 얻었다.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불리게 된 이 닉네임들은 그녀와 독자 사이의 친밀감을 나타낸다.
이 웹툰의 가장 큰 무기는 공감이다. 여타의 일상툰이 그러하듯 공감은 일상툰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마치 자신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그린 것 같은 공감을 통해 독자들은 일상툰을 소비한다. 그래서 일상툰을 일기를 보는 것 같다는 의미에서 다이어리툰, 혹은 에세이툰이라고 한다. 혹자는 일상툰을 또다시 공감툰으로 장르화하기도 하는데, 이는 생각해볼 문제다. 일상툰의 중요한 요소가 공감이라 한들, 공감의 범주는 너무나 넓다. 하물며 개그툰도 공감하지 못하면 웃지 못한다. 어쨌든 이 일상툰은 웹툰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웹2.0 시대 이전부터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통해 확산되었다. 개인 홈페이지 개설이 유행하던 시점에 유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업로드하게 되었고, 그것이 인기를 끌면서 일상툰, 다이어리툰으로 고착되었다. 그야말로 비전문성을 지닌 아마추어들이 웹툰에 진입할 수 있는 최적의 소재가 일상, 즉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까발린다고 해도 한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일상과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기란 쉽지 않다. 특히 그것이 불특정 다수의 인터넷 유저들이라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퀴한 일기>는 많은 유저들로부터 공감을 획득했다. 6년이라는 장기간의 연재도 일종의 성공으로 보아야겠지만, 댓글에서 보이는 팬들의 충심(!)은 이미 두터운 팬층을 형성한 듯 보인다. 베스트 도전 때부터 읽어온 독자는 작가의 정식 연재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중간에 유입된 독자의 쓴소리에는 기존의 팬들이 적극적으로 방어한다. 그렇다면 <퀴퀴한 일기>의 작가와 독자 사이의 끈끈한 연대감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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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새해다짐 편.
 
<퀴퀴한 일기>의 주인공 보람은 자신의 일상을 넋두리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누구나 한번 쯤 했음직한 생각과 겪었음직한 일상을 펼쳐 보여줌으로써 공감을 얻는 일상툰이 있다면, <퀴퀴한 일기>는 생각과 경험들을 자신만의 해법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이 해법이란 것이 거창하거나 늘 옳은 것도 아니다. 때로는 유치하고, 때로는 자기 합리화에 비겁한 변명에 그치기도 하지만, 그 점이 이 퀴퀴한 일상에 묘하게 중독되게 만든다. 이것은 완벽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완벽을 가장하며 고군분투 했을 이들에게 자신이 숨겨야만 했던 헛점들이 우리의 주인공 보람을 통해 폭로되는 순간 알 수 없는 해방감과 통쾌함은 위로가 된다. “즈질스럽고 퀴퀴한 언니의 쿰쿰한 일상다반사라는 웹툰의 소개말처럼 꽁꽁 싸매어 두었던 우리 안의 찌질함을 죄책감 없이 잠시나마 풀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섬네일에서 보이는 그녀의 막돼먹은 패션 역시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풀어놓은 해방감이 아??? 수 없다.
그래서인지 <퀴퀴한 일기>의 주요 독자층은 2030 이상의 여성이다. 이런저런 사회적 제약에 지칠 대로 지친 여성들에게 <퀴퀴한 일기>는 들끓는 욕구들이 분출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30대 중반이 된 여성-<퀴퀴한 일기>의 보람은 2017년에 36살이 되었다-은 여전히 철들지 않았고, 철들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재택근무 덕에 백수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그녀에게 긴장의 경계란 없다. 그러다가도 문득, 어느새 나이만큼의 성숙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굳이 어떤 질서를 따르고자 고군분투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재된다. 때로는 여자들 사이에서나 했을 법한 19금의 농담들도 수위를 조절하며 의뭉스럽게 풀어낼 줄도 안다. 금기시 되어 온 여성들의 이야기가 공적공간에서 적당한 유머로 제시되는 완급조절력(!)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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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음란마귀 편.
 
사회적 지위와 젠더적 질서에 함몰돼버린 여성들의 피로감이 이 웹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을 유쾌하고 통쾌한 방식으로 풀어버림으로써 퀴퀴한 일상퀴퀴하지 않은 일상으로 바꿔버린다. 댓글에서 독자들이 그녀를 언니로 호명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이다. 보람은 요즘 유행하는 쎈언니’, ‘걸 크러쉬와 조응하며 일상의 피로감을 해방시켜준다. 물론 캐릭터의 이미지는 다른 면모지만, 보람 특유의 잔망스러움과 일상을 대하는 진지함은 곁에 두고 싶은 언니”, “힘이 되어줄 것 같은 언니로 독자들에게 공감과 위안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퀴퀴한 일기>가 여성 독자들의 해방구가 된다는 점은 한편으로는 그녀들의 욕구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81[노처녀 히스테리] 편은 독자의 반응이 작가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 경우다. 공공장소에서 민폐를 끼치는 아이들과 그것에 무한 관용을 베푸는 부모의 문제를 에피소드로 구성했지만, 정작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부당한 상황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 노처녀 히스테리로 몰아가는 사회 모순을 꼬집은 것이다.
그러나 일부 댓글은 전자의 에피소드로부터 불쾌함, 불편함을 느꼈다는 반응이었다. 이는 얼마 전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맘충이라는 단어에 내재된 여성 비하, 조롱에 위축된 반응, 즉 명백한 피로감이다. <퀴퀴한 일기>는 의도치 않았지만 독자의 반응은 노처녀 vs 맘충의 대립구도를 만들어버렸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위치, 모성의 역할에 데어버린 여성들의 두드러기 반응이 댓글로 나타난 것은 결국 <퀴퀴한 일기>를 읽는 독자의 기대치가 드러난 것은 아닐까. 뜻하지 않은, 예상치 못한 반응이겠지만, 독자와의 공감을 우선하는 일상툰이기에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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