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 바로가기
HOME > 만화Zine > 파워리뷰

파워리뷰

파워리뷰

환절기

작성자
김성훈
작성일
2017.03.22
조회
121
twitter facebook 구글플러스
동성애, 편견(偏見)과 인정(認定) 사이
이동은·정이용<환절기>
 
표지.jpg
 
 
 
김성훈(만화평론가)
 
과거에 비해 열린 사회로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종교적 가치관 혹은 관습적 분위기 그도 아니면 여타의 이유로 동성애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소재임에 틀림없다. 반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차별화된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는 소재라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 차별화가 심화되어 ‘BL’ 혹은 백합과 같은 특정한 하위 장르로 안착되기도 했다. 하지만 BL이나 백합이 동성애에 관한 판타지를 구현시킴으로써 현실과는 괴리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사회 구성원으로서 동성애자들에 대한 이해와는 거의 무관한 내용을 담아낸다. 그런 측면에서 <환절기>BL이 아닌 그야말로 동성애에 관한 만화라고 할 수 있다.
 
아들과 아들의 친구 그리고 엄마
 
작품에는 주요 인물로 용준과 수현 그리고 수현의 엄마가 등장한다. 용준의 어머니는 용준의 고등학교 시절에 자살했다. 보호자가 없어진 용준을 수현은 자신과 엄마가 살고 있는 집에서 지내게 한다. 수현의 어머니 역시 남편이 사업차 필리핀으로 떠난 수년 전부터 적적하게 지내고 있던 터라 싹싹하고 예의바른 용준이 그리 싫지 않다. 무엇보다 어떤 친구도 집에 데려온 적 없던 아들이 처음으로 초대한 친구라서 용준에 대한 그녀의 신뢰는 처음부터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용준 또한 무책임하게 떠나버린 어머니를 대신해 수현의 어머니를 잘 따르는 듯 보인다. 그러니 고등학교 졸업 후 군대 가기 전날에도 일부러 그녀에게 만나러 올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아들이 어머니에게 입대 인사를 고하듯이 말이다.
 
이처럼 과거의 시간 속에서 세 사람의 만남이 평화롭고 안정적이었다면, 시간이 흘러 현재에서 만난 이들의 사연은 꽤 복잡하다. 그 복잡한 사연 한가운데 의식불명 상태로 입원해 있는 수현이 자리 잡고 있다. , 용준보다 입대가 늦었던 수현은 제대하자마자 용준을 만나 여행을 떠났고, 운전 중에 사고를 당하게 된다. 헌데 보조석에 앉아있던 용준은 크지 않은 상처만 입은 채 사지 멀쩡하건만, 수현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것이다. 친구는 죽을지도 모르는 처지인데 자신만 멀쩡한 용준으로서는 수현의 어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 자칫하면 자식을 먼저 떠나보낼 수도 있게 된 수현의 어머니 입장에서야 고통스러운 심정을 말해 무엇하랴. 그러니 각자의 처지에서 세 사람에게 지금은 견디기 쉽지 않은 시간이다.
 
이처럼 세 사람이 공유한 시간에는 아픈 현재좋았던 과거가 혼재되어 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상처 입은 세 사람의 현재를 동준과 수현의 고등학교 시절 시간들과 교차하면서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 고통스러운 세 사람의 처지가 하나씩 보여질 때면 아들과 엄마 그리고 아들의 친구가 서로를 의지하면서 보냈던 과거의 시간들 또한 하나씩 드러난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그들의 좋았던 시간들 속에서 가슴 시린 현재의 상황을 배치하고 있다. 그로 인해 인물들이 지닌 상처는 현재의 시점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것보다 어쩐지 배가 되는 느낌이다. 마치 실연당한 이가 연인과 좋았던 시절을 기억할수록 상처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과 흡사하다면 적당한 비유가 될까.
 
그런 가운데 용준을 대하는 수현이 어머니의 태도가 왠지 차갑다. 그건 내 아들은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넌 왜 이렇게 멀쩡하니?’라는 식이 이기적인 모성애와는 다른 느낌이다. 수현처럼 용준 역시 사고의 피해자임을 그녀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원인은 간단하다. 두 사람이 여행 다니는 동안의 시간을 기록해놓은 수현의 카메라가 다른 물품들과 함께 사고현장에서 수거되어 환자 보호자에게 인계되었고, 그 카메라 속에 담겨진 내용들을 들여다 본 후 용준에 대한 수현 어머니의 태도는 얼음장이 되어버렸다. 작품은 끝까지 카메라에 담긴 사진들을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어떤 사진들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일까.
 
 
48-49.jpg 50-51.jpg
그림 1 《환절기》 ,  49-50쪽
 
어머니의 이름으로
 
생각해 보면 수현 어머니에게 있어서 수현은 그저 평범한 아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수 년 동안 외국에 나가 있으면서 마치 타인처럼 살고 있는 남편을 대신해 그녀의 일상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원동력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아들이 제대 후 여행을 떠났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귀가했다면 그 심정은 어떨까. 담당의사는 식물인간 상태라면서 4개월 정도가 고비라고 얘기하고, 뒤늦게 귀국한 남편은 죽을지도 모르는 자식을 두고 다시 출국해야 한다는 얘기나 건네고 있다. 머릿속은 복잡하지만 그녀가 울분을 토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친구와 여행을 떠났던 아들의 시간이 기록되어 있는 디지털카메라가 손에 들어왔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을 아들 대신 되새김질 하던 그녀의 얼굴에 흐뭇한 웃음 대신 어두운 표정이 자리 잡아 갈 즈음, 독자들은 자신들이 볼 수 없는 사진들의 내용에 대해 궁금해 할 것이다. 그녀는 심각한데 독자들은 볼 수 없는 내용은 무엇일까. 그 사진들 속에는 친구와 함께 즐거웠던 아들의 시간들뿐만 아니라 연인과 함께 한 아들의 정체성까지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용준에게 보여준 서릿발 같은 차가움은 그녀의 복잡한 심경을 대신한다. 해외에서 딴살림을 차리고 있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제대하자마자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이 된 아들의 상태만으로도 그녀는 온전히 정신 차리기가 힘들건만 거기에 더해 갑작스럽게 밝혀진 동성애자라는 아들의 정체성은 그녀를 극한으로 몰고 간 셈이다. 아들과 같이 여행을 떠났다가 홀로 멀쩡하게 살아 돌아와 자신 앞에 서 있는 아들의 동성 연인에게 어느 부모가 곱게 얘기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에 대한 그녀의 대응은 꽤 이성적이다. 얼마 뒤 퇴원 인사를 하러 온 용준에게 그저 시선을 외면한 채 이제 연락 안 했으면 좋겠네.”라는 말로 아들과 아들의 친구의 관계를 애써 부정하려 하기 때문이다.
 
 
img-322112326-0001.jpg d.jpg
그림 2 《환절기》 ,  94-95쪽
 
 
다행히도 수현은 의식이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를 준비한다. 회복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와 용준의 갈등은 계속 되지만, 결국 어머니는 수현에게 헌신하는 용준의 모습에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아들 간병에 집중하기 위해 남편에게 이혼이라는 선택지를 내밀며 위자료를 요구했던 어머니에게 있어서 아들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을 것이며, 자신만큼 지극정성으로 아들을 보살피는 용준의 모습에 어머니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이 보여주는 주요 소재에 대한 접근방식은 꽤나 전략적이라 할 수 있다. , 동성애자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시각에 맞춤으로써 편견에 대한 도전을 더욱 확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이 보여주는 동성애에 관한 시선은 우리가 알고 있는 통상의 동성애 소재물과는 조금 다르다. 주인공들의 성 역할에 있어 일반적인 로맨스와 크게 다를 바 없는 BL작품과 비교해서는 안 되며, 르포 형식의 사회고발 프로그램이나 혹은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희망하는 이반들의 자기고백적 내용과도 구별된다. 주변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동성커플의 주장이나 호소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을 아들과 아들의 연인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에서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많은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을 고민하게 될 때 최후까지 고려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가장 이해받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바로 자신들의 부모가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이 보여주는 시선은 동성애에 관한 우리 사회의 금기를 다시 한 번 돌이켜보게 만든다.
좋아요
목록
이전글 허니 블러드
다음글 유부녀의 탄생

퀵메뉴열기